여행, 글/다시 쓰는 여행일기

여행 준비

김나무 2021. 9. 4. 08:30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어디로 여행을 떠날 것인지 정하는데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과 물가가 싸면서 볼거리가 많은 곳을 기준으로 정했다. 물론 여행은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여행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첫 여행지는 러시아로 정했다. 러시아로 정한 이유는 단순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싶었고 바이칼 호수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첫 여행지를 정하고 2016년의 마지막 날, 나는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나서부터 설레는 날들이 시작됐다. 그저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정한 것뿐인데 내 일상의 온도는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여행 준비에 욕심을 내다보니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목베개부터 수면 안대까지 모두 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필요한 리스트를 정리하다 보니 배낭에 채울 물건들이 늘어났다. 처음으로 떠나는 장기 여행이었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다 보니 물건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제 와서는 그게 미련한 짓임을 알게 됐지만 그때의 나는 몰랐다. 필요하면 여행지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들을 굳이 한국에서부터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 아직 햇병아리 여행자, 그때는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물건 중 하나는 바로 배낭이었다. 배낭을 메고 장기간 여행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도 불편하지 않고 무거워도 튼튼하게 멜 수 있는 배낭을 원했다. 배낭을 너무 무겁게 들고 다니면 꼭 탈이 나는 법이다.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배낭은 무조건 가벼워야 한다는 것이다. 배낭의 짐은 꼭 필요한 것들로 최소한의 물건들로만 채워야 한다. 내가 첫 장기 여행에서 간과했던 점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해 물건을 많이 챙겼던 것이다. 여행을 떠난다고 새 제품을 많이 샀기 때문에 여행 중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버리려고 해도 아까워서 제대로 버리지 못했던 적도 있다. 누구나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로 여행을 가던지 모두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웬만한 제품들은 모두 여행지에서 구매할 수가 있다.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배낭을 무겁게 챙길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모두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게 아이러니다.

 

여행 초반 터질 것만 같은 배낭과 주렁주렁 달고 다녔던 짐들

 

 여행을 준비하는 데 중요한 또 하나는 바로 여행 예산을 설정하는 것이다. 돈이 있어야 여행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얼마 정도의 예산으로 언제까지 여행할 것인지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대략적인 여행 루트를 정하고 여행 경비에 대한 예상 내역을 만들었다. 여행 경비는 650만 원, 여행 준비를 위해 지출한 금액을 포함하면 750만 원 정도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에 한인 민박에서 일하며 번 돈과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들에게 감사하게 받았던 용돈을 합하면 9개월 간 여행 경비는 약 850만 원 정도 지출했다. 한 달에 대략적으로 100만 원을 지출할 것이라 예상했고 이는 숙박비, 식비, 이동비, 액티비티 체험 등 모든 것을 포함한 금액이었다. 물가가 싼 나라에서는 예산 기준에서 덜 쓰고 물가가 비싼 나라에서는 예산 기준으로 아껴 쓰자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 아끼며 여행하는 가난한 여행을 했다. 그렇지만 후회는 없다. 하나를 선택하려면 다른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하는 건 여행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여행 경비를 최대한 아꼈지만 그래도 잘 먹고 잘 돌아다니며 여행을 했다.

 

 

 여행지는 계절에 맞춰서 가고 싶은 곳을 정하거나 여행 경비에 맞춰 최대한 오래 여행할 수 있을만한 국가로 정했다. 그래서 내가 여행한 대부분의 나라는 비교적 물가가 저렴했다. 여행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정해놓고 떠날 수 없다. 여행지에서 무슨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 생각보다 더 오래 머물 수도 있고 더 일찍 떠날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웬만하면 구체적인 일정을 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출발 일정과 러시아에서 떠나는 날을 제외하고는 일정을 따로 정해두지 않았다. 그저 여행지가 좋으면 더 머물고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는 생각을 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산티아고 순례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일정은 모두 여행을 하며 즉흥적으로 정했다. 나는 주로 비자 발급에 큰 무리가 없는 곳들을 여행했고 무비자 입국이나 도착비자를 받을 수 있는 곳들을 여행했다. 덕분에 여행 준비가 한층 수월했다.

 

 

 여행을 떠나기 한참 전부터 여행 준비를 했기 때문일까 여행을 떠나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실감이 나지 않았다. 2년 동안 정들었던 자취방을 다 정리하고 나서야 떠난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위해 익숙한 것에 작별을 고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그저 정든 것을 뒤로하고 떠날 생각에 더 들떠 있었다. 당시의 나는 무척이나 어렸다. 아마 그래서 별생각 없이 떠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훌쩍 떠나도 그대로 나를 기다려 주는 것들이 있을 거라 믿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고 당연하게 믿던 시절의 참 어렸고 순수한 믿음이었다. 나는 새로움을 찾아 떠나면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 있길 바랐다. 결국 내가 변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음을 나는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깨닫지 못했다.

 

 

 어찌 됐든 시간은 흘러갔고 내가 선택한 여행의 날이 다가왔다. 내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도 모른 채 그저 즐거운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설렘을 안고서 나는 여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9개월 동안 러시아, 조지아, 아르메니아, 터키,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 이집트, 태국을 여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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