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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30] 조지아 여행 벌써 한 달

김나무 2020. 12. 17. 21:18
 2017.08.09. 목요일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하루. 오늘은 제법 일찍? 9시 정도에 일어났다. 오늘은 밖에 나가려고 씻을 준비하고 샤워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사람의 마음은 갈대 같아서 오늘도 숙소에서 죽치고 있었다.


오늘따라 책은 왜 이리 재밌고 밖은 어찌나 더운지 나가기 싫어라. 그래서 배 터지게 늦은 아침을 먹고 책을 읽었다. 얼마나 읽었을까 잠이 와서 오늘도 어김없이 낮잠 시간!ㅋㅋㅋㅋ 맨날 먹고 자고 먹고 자는 중... 나 지금 여행하는 거 맞니??


얼마나 잤을까 배가 고파서 일어났다. 감자국이 먹고 싶어서 감자를 썰고 양파를 썰었다. 근데 파도 없고 육수용 멸치도 없고 그냥 이름 모를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감자에 양파, 소세지 , 계란까지 들어간 이름 모를 요리! 근데 나름 맛이 괜찮아서 배 터지게 먹었다.


요리할 때 이 호스텔의 장기 투숙자님이 들어와서 인사했는데 자기가 사 온 아이스크림을 내게 하나 건냈다. 완전 천사ㅠㅠ 저번에 이름 물어봤었는데 까먹어서 다시 물어봄ㅋㅋㅋ 이름은 다니엘, 나이지리아에서 왔다고 했다.

두 개 사온 아이스크림 중 하나는 나를 주고 하나는 마나나를 줬다. 자기는 냉동실에 얼려 놓은 우유?, 요거트 같은 거에 설탕 섞어서 오이랑 같이 먹고ㅠㅠ

밥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는데 조지아에 온 지 벌써 9개월 정도가 됐다고 했다. 그래서 계속 이 숙소에 있었냐고 물었더니 다른 데는 비싸서 못 가고 계속 이 숙소에 머무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자기는 지루하게 살고 있다며 근데 그게 좋다고 했다. 여행하며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고 쉬는 것도 좋고 그러다가 기차 탔을 때 자기한테 들이대는 남자를 만났었다고. 그래서 자기는 여자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계속 들이대서 난감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연애 얘기까지 듣게 됨ㅋㅋ

여기 와서 여자들 많이 만났는데 사귀고 싶진 않다고 자기는 돈도 없고 또 마음을 주고 사귀게 되면 한 없이 여자친구 생각만 하고 게을러질까 봐서 그런단다. 사실 나이지리아에서 9년 동안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다니엘이 조지아 오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다른 남자랑 있는 사진을 페북에서 보고 헤어졌다고ㅠㅠ 같이 있지 못하고 잘 못 봐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하더라. 근데 그 이후로 전 여친 페북, 왓츠앱, 휴대폰 번호도 다 차단하거나 삭제해서 이젠 기억도 안 난다고 했다. 근데 그 얘기하는 눈빛이 어찌나 슬퍼보이던지.

나도 뭔가 얘기를 많이 하고 싶었는데 다니엘 이야기를 반을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 들었다. 아아, 영어 고자는 오늘도 웁니다ㅠㅠ

그리고 갑자기 머리카락 얘기가 나왔는데 다니엘 머리가 레게 머리 가티 생겨서 물어보니 원래 그런 머리라고 했다. 아프리카 사람들 머리카락은 겁나 세다고 그리고 내 머리카락을 만져보더니 니 머리카락은 너무 약하다고ㅋㅋㅋ

내가 너 같은 머리 좋다고 했더니 이 동네에 아프리카 살롱 있다고 같이 가자는 게 아님? 그래서 오늘은 아니라고ㅋㅋㅋ 다니엘은 염색약을 보여주며 자기는 염색할 거라고 했다. 검정색 염색약이었는데 내가 보기에 니 머리 검은색인데 왜 염색하냐고 그러니까 까매 보이는데 햇볕을 너무 많이 봐서 갈색이라고 그래서 까만색으로 염색해야 된다고 했다. 아...그렇구나ㅋㅋㅋ

그리고 다니엘은 염색약을 들고 자기 살롱 가봐야 한다고 나감ㅋㅋㅋ 아, 셀프 염색이 아니었구나?! 말귀를 못 알아듣는 자는 오늘도 엉엉 웁니다ㅠㅠ

심심하게 지나갈 수 있는 하루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얘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얻어먹었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여행자인데 이렇게 좋은 사람들만 만나고 있다. 오늘이 내 여행 시작한 지 한 달 째인지 다들 어떻게 알고 다들 먹을 걸 주는 건지ㅠㅠ

마나나는 갑자기 나한테 먹어보라고 귀요미 포도를 주지 않나 다니엘은 아이스크림을 주고! 근데 아이스크림 먹으려고 냉동실 보니까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사라짐...? 나 안 먹었는뎈ㅋㅋㅋ 다니엘이 나 머그라고 준 건데. 사실은 그냥 이거 냉동실에 넣어줘 라고 말하고 나에게 줬나...뭐지?? 미스테리, 미스테리 후!

아직 덜 컸지만 달달한 포도!


오늘도 좋은 하루다. 안나 카레니나 읽는 중이다. 모스크바에서 톨스토이 기념관에도 다녀왔는데 책은 읽어줘야 할 것 같아서ㅎㅎ 역시나 불륜 얘기는 재밌는 것. 하지만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귀요미 고양이 사진으로 마무으리!

방충망 밖으로 보이는 너는 귀요미

 

 

※ 이 여행 일기는 2017-2018년 배낭여행을 하던 당시 실시간으로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다시 포스팅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