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17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어제 이네사와 보바 그리고 목이 언니랑 같이 빡세게 러시아어 공부하고 일찍 잤다.
근데 얼마나 잘 잤는지 자면서 한 번 정도 밖에 안 깬듯ㅋㅋㅋ 이제는 정말 기차에 완벽 적응 했다.
일곱시 쯤에 일어나니 기차가 역에 정차하는 시간이라 바로 일어났다.
기차 타고 처음으로 보조배터리랑 휴대폰을 충전했다
온수기! 이 앞쪽에 콘센트가 있다.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가 한 호차에 앞뒤에 있는 화장실 가는 길목에 하나씩 밖에 없었다.
거기는 늘 핫플레이스라 충전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거기에 매일 보이던 파란색 티의 러시아 미소년은 아마 자기 자리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콘센트 앞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을 것 같다.
오늘은 내가 좀 일찍 일어났더니 이른 아침이라 콘센트 사용하는 사람이 없기에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콘센트 앞에 죽치고 앉아서 책을 읽었다.
아침 햇살은 따뜻했고 충전하는 도중에 같은 호차에 타고 있는 한국인 동생 2명을 만났다.
이틀 동안 기차에 있었는데 심지어 같은 호차에 타고 있었는데!! 다른 한국 사람을 못 알아 봤다니 ㅠㅠ
반가워서 서로 이름이랑 나이를 물어봤다. 동생은 친구랑 함께 여행 왔고 이르쿠츠크에 내려서 하루 쉬고 바이칼로 간다고 했다. 나랑 일정이 똑같아서 신기하다고 시간 맞으면 같이 가자고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계속 콘센트 앞에서 충전을 했다. 기차 전력이 약한지 해도해도 충전이 조금 밖에 안되는 신기한 현상이...
한 시간 삼십분 정도 있었을까 휴대폰은 반 정도 충전되고 보조배터리는 1,2칸 채워질까 말까 했다.
역시나 기차에서 충전은 제대로 바라지 않는 게 좋다. 그리고 배고파서 아침을 먹고 나른한 아침이 시작됐다.
이네사가 잠깐 역에 정차했을 때 러시아 껌 같은 거라고 이거 맛 보라며 사줬다. 또 감동ㅠㅠ 아마 밥 먹고 이거 씹으면서 양치하는 느낌 받으려고 씹는 것 같기도 하고 자세하게는 모르겠는데 러시아 전통 껌 같은 거란다.
오늘도 어제 놀러왔던 그 느낌이 안좋은 검은티 아저씨가 친구 자리에 밥먹으러 왔다.
오늘은 걍 신경 잘 안 쓰려고 했다.그런데 우리 자리로 와서 우리 이름 말하면서 뭐 러시아어로 어쩌고 하다가
목이 언니한테 갑자기 남친있나 물어보는게 아닌가. 이네사가 그렇게 번역해서 알려 줬는데 거기 부터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목이 언니가 이네사한테 저 아저씨랑 얘기하고 싫다고 전달했더니 이네사가 목이 언니한테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언니 잠깐 화장실로 도망가고 난 그냥 무신경 이번에도 뭐라하는데 못알아 들으니까 걍 씹음ㅋㅋㅋ
그리고 어찌 저찌 하다가 아저씨는 갔음 휴,
아침부터 기차 화장실에 물이 잘 안 나왔는데 결국 고장났다. 변기도 부서졌나 안된다고 하고ㅋㅋㅋ
그나마 다행인건 내가 세수하고 나서 고장났다. 사실 세수할 때 물이 졸졸졸 나오다가 안나오다가 해서 겁나 고생했는데 고장이 났더라...ㅠㅠ
하하하하 그래도 오늘이 마지막으로 자는 날이라서 괜찮다 위안했다. 기차에 적응할만 하니 이제 곧 떠나는 날이다.
기차 안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 갈 때는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더 바란다면 나는 정말 욕심쟁이일 것이기 때문에 다음번에 기차 타면 그냥 가만히 있어야 겠다.
비 오는 날 기차 안
기차에서는 이네사랑 목이 언니 보바도 있고 완전 귀염둥이 마리나도 있어서 심심할 틈이 없었다.
그리고 횡단열차 탔을 때 내 침대 앞에 통로를 지나서 북한 아저씨가 탔다. 처음 탈 때 옷에 뱃지를 달고 있어서 알았다. 우리는 언제쯤 마음 터놓고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이 드는 밤
오늘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다. 싱숭생숭...
벌써 내일 내린다니 이상하다. 눈 깜빡할 사이에 또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내일이면 마지막 날.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겠지.
오늘은 잠이 제대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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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내가 여행하면서 실시간으로 올렸던 여행일기다.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면서 못다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북한에서 러시아로 노동하러 나온 아저씨들을 만났다는 것이었는데 당시에 북한 아저씨들 신변이 걱정돼서
+인터넷에 이 이야기 적어도 될지 몰라서 블로그에 적지 않았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 얼마전 유튜브를 보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에 걸린 영상이 하나를 봤다.
바로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 북한아저씨들을 만났다는 영상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이야기를 풀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적는다.
내가 여행하던 당시는 3년 전 여름이었는데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 북한 아저씨들을 만났다.
한눈에 봐도 북한사람인지 알 수 있었던 이유는 가슴팍에 김정일, 김일성 얼굴이 그려진 붉은 색뱃지를 달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처음에는 말을 걸어도 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내 두 귀로 북한 말을 쓰는 아저씨들의 음성이 생생하게 들리고
말을 걸고 싶어서 입이 간질간질 했는데 그 전에 북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어야지!!
그러다가 기차를 오가는 중에 북한 아저씨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렇게 북한 아저씨들과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빌어줬다.
아직도 아저씨가 먹으라고 줬던 하트모양 대동강빵이 생각난다.
맛이 없는 빵이었는데 아저씨의 마음이 고마워서 맛있다며 다 먹어버렸지..
그 당시에 아저씨들과 같이 찍은 사진이 없어서 아쉽다.
영상을 찍으려고 했더니 촬영하는 거냐고 물어서 놀라며 카메라를 껐던 기억이 난다.
쓸쓸한 아저씨들의 뒷모습을 사진과 그림으로 남겼다.
러시아에 노동 나오면 3년은 러시아에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던 아저씨들.
돈 많이 벌어서 북한으로 돌아갔으려나
가끔 물을 수 없는 안부를 공중에 흩뿌리곤 한다.
멀지만 멀지 않은, 말이 통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신기하고 따뜻한 경험을 했던 날.
불편한 이야기가 될까봐 북한체제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히 하지 않았는데
역시 사람은 살아온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 잊은 것들이 많아서 기억이 휘발되고 나도 모르게 살이 더 붙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오늘이라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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