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18
벌써 횡단열차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오후 3시 넘어서 이르쿠츠크에 도착 예정이기 때문에 늘 그랬듯이 그냥 쉬었다ㅋㅋ
기차에서 처음 사귄 러시아 친구 이네사는 이르쿠츠크 자로 전 역인 슬류단카 역에서 내린다고 해서 아침부터 목이언니랑 나랑 계속 아쉬워 했다.
기차에서는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너무 받기만 한 것 같아서 몸둘바를 모르겠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니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러시아 사람들은 민트색을 특히나 좋아한다고 목이 언니가 말해줬다. 그리고 정차한 역에서 찍은 사진.
기차는 계속 달려 바이칼 호수가 보이는 곳 근처까지 왔다.
기차에서 본 풍경이 얼마나 예쁘던지! 바이칼 호수가 시작되니 기차에 있는 사람들도 다 바이칼 호수를 보고 있었다.
오늘로 기차에서 보는 풍경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다음주에 다시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를 탄다. 그렇지만 이번에 만났던 사람들이 워낙 좋아서 계속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목이 언니는 이네사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것들을 선물했다. 근데 나는 딱히 선물이라고 줄만한 게 없었다. 딱 필요한 것만 들고 온 장기 배낭여행자는 슬프다. 그런데 그 때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게 하나 있었으니 바로 미니언즈 양말!! 한국에서 출발 전에 샀던 미니언즈 양말이 생각났다. 기본 양말이 딱 미니언즈 양말 2개 였는데 하나는 신었던 거고 하나는 새거였다.
이네사에게 신지 않은 새양말을 줬다. 근데 마리나에게 줄 선물이 없는 거ㅠㅠ 그래서 한 번 신었던 양말을 줬다는... 마리나 미안해ㅠ 그래도 깨끗하게 신었던 양말이니 잘 신어줘! 마리나에게 주니까 캐릭터가 있어서 그런지 좋아했다. 바로 신어 보더니 마음에 들어해서 나도 좋았다.
마리나가 달부티를 좋아해서 마지막 날에도 어김없이 달무티를 했다.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그래도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더라. 시간은 또 어찌나 빨리가는지 곧 이네사가 내릴 역이 가까워졌다. 짧은 영어로 그리고 구글번역기 써가며 대화하고 같이 밥먹고 게임하던 게 아직 눈에 선한데 이네사는 집으로 간다. 목이 언니는 이네사 갈 때 울 것 같다고 그러면서 벌써부터 울먹거렸다. 나는 잘 울지 않는 편인데 울컥했다.
이네사에게 만나서 정말 반가웠다고 꼭 한국 놀러 오라고 얘기했다. 한국 오면 같이 치맥 먹으면서 목이언니랑 놀자고 그랬는데 그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네사가 내릴 역에 도착했다. 이네사가 짐을 같이 들어 달라고 해서 당연히 그래야지 하며 목이언니랑 같이 짐을 들고 내렸다. 이네사가 역에 도착했을 때 창 밖으로 저기 엄마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반가워했다. 이네사 어머니는 풍선이랑 꽃을 들고 이네사의 여동생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에서 내리고 이네사 엄마와 두 여동생들을 만났다. 얼마나 행복해보이던 가족인지 이네사랑 엄마가 안을 때 내가 다 행복했다.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을 받았다. 이네사 어머니가 선물이라며 봉지를 건네주시는 게 아닌가! 슬류단타 역에서는 딱 2분만 정차해서 내가 탔던 12호차 기장님이 얼른 타라고 손짓하고ㅠㅠ 더 배웅하고 인사해주고 싶었는데 아쉽게 기차에 올랐다.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은 목이 언니는 이네사랑 헤어지는 게 못내 아쉬웠던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언니가 그렇게 우니 나도 모르게 감성폭발 할 뻔 했으나 난 역시 거기까지. 그런데 우리 자리에 와서 봉지 안에 있던 이네사의 편지를 보는 순간 진짜 울컥했다. 기차에서 가족들에게 부탁해서 영어로 쓴 편지도 받고 바이칼에서만 산다는 물고기 오물(Omul)도 받았다. 바이칼 마그넷이랑 그리고 솔방울 같이 생긴 Cedar cone도 받았다. 안에 맛있는 견과류 같은 게 들어 있다며 편지에 같이 적혀 있었다.
이네사라는 러시아 친구를 기차 안에서 만난 것만으로도너무나 감사한데 이렇게 선물까지 받으니 정말 몸둘바를 모르겠더라. 목이 언니는 편지 보고 더 울고ㅠㅠ 좋은 사람과의 만남 후에 헤어짐은 언제나 힘들다.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네사의 마음처럼 따뜻한 오물을 먹었다. 훈제해서 구운 것 같았는데 진짜 정말 맛있었다!! 오물을 먹으면 앞으로 하는 일이 잘되길 바란다는 뜻도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더 감동해서 싹싹 긁어 먹었다.
나에게 생선뼈를 잘 바르는 기술이 있을 줄이야!
오물을 맛있게 먹고 마리나와 함께 달무티 몇 판을 하고 나니 이르쿠츠크에 도착할 시간이 거의 다 됐다.
3일 동안 침대 아래에 묵혀 놓았던 내 배낭을 꺼내고 짐 정리를 했다. 침대와 베개 시트를 벗기고 수건까지 잘 챙겨서 내가 탄 호차 기장님에게 반납했다. 첫날에 빌렸던 컵과 숟가락도 반납하고 나니 정말 내린다는 게 실감 났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이르쿠츠크역에 도착했다. 배낭을 채 메기도 전에 역에 도착해서 허겁지겁 배낭을 메고 짐을 챙겨 기차에서 내렸다.
이르쿠츠크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내렸는데 그래서 내린 후에 마리나랑은 제대로 작별 인사도 못했다ㅠㅠ
내가 내리고 나서 보니 마리나는 벌써 갔는지 안 보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역을 나왔다. 같이 기차에 탔던 동생들과 인사하고 나는 목이 언니랑 함께 트램을 기다렸다.
이르쿠츠크 트램 노선
목이 언니는 버스나 트램 아무거나 타고 언니 숙소로 갈 수 있는데 나랑 같이 가려고 한 30분 정도 기다려 줬다. 얼마나 고맙던지 같이 갈 친구가 생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다. 트램 기다리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진짜 이거라도 내가 사줘야 할 것 같아서 못난 동생은 웁니다 엉엉ㅠㅠ
봉지 안에 아이스크리 들어 있는데 존맛!
언니와 같이 4a 트램을 탔다. 언니가 먼저 내렸고 나는 4정거장 정도 더 간 후에 내렸다. 트램을 처음 타봤는데 신기했다. 도로에 자동차와 함께 달리는 것도 신기했고 자동차랑 같이 다니는데 사고가 나지 않는 다는 게 더 신기했다. 그리고 트램 안에 운전기사 말고 이용요금을 받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트램이 출발하고 나서 15루블을 받고 표를 끊어 준다. 나는 내가 내릴 역이 어딘지 잘 몰라서 이 트램이 거기까지 가느냐고 물어보니까 맞다고 했다. 그리고 친절하게 내가 내릴 곳에 다와 가니까 조금 더 가면 내가 내릴 곳이라고 말해줬다. 러시아어는 못하지만 딱 그렇게 말하는 느낌이었다.
트램에서 내리니 바로 대각선 길 건너편으로 내가 예약한 숙소 간판이 보였다.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까 목이 언니랑 숙소에 체크인 하고 씻고 난 후에 같이 시내쪽에서 만나기로 얘기 했다. 언니가 저녁 사준다고 해서 염치없지만 좋다고 하며 이따가 만나자고 하고 각자 숙소로 갔다.
숙소에 도착하니 친절한 스텝이 방이랑 내 침대를 알려줬다. 내 자리는 2층 침대의 2층이었다. 내 자리 빼고 다른 침대에는 다 임자가 있는 것 같았다.
빠르게 짐을 풀고 기차에서 보낸 3박 4일 동안 샤워를 못했기 때문에 바로 샤워를 하러 갔다. 샤워실은 괜찮았고 머리도 두 번 감고 샤워도 두 번 했다. 기차에서 입은 옷 냄새를 맡아 봤는데 웰열ㅋㅋㅋㅋ 난리도 아니더라. 근데 그래도 할 수 없다. 기차에 있을 때는 코가 마비됐는지 아무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ㅋㅋㅋㅋ
빨래를 하려고 했는데 따로 돈을 받아서 일단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대충 준비해서 밖으로 나갔다. 내일 바로 알혼섬으로 들어 갈거라 숙소 바로 옆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버스터미널 티켓 창구로 가서 내일 오전에 알혼섬 가는 버스표 있냐고 물어봤다. 티켓부스에 있는 러시아 아줌마가 없다고 했다가 바로 내일 오전 8시랑 10시에 있는데 몇시로 할건지 물어봤다. 그래서 8시에 출발하는 버스표로 구매완료! 보니까 그것도 딱 1장 남아 있었다. 짐 값을 따로 받았는데 다 합해서 637루블 정도였다. 제발 제대로 예약된 것이길 바라며...
내일 알혼섬으로 가는 버스티켓 예매하는데 성공하고 룰루랄라 목이언니를 만나러 약속 장소로 향했다. 가는 길래 중앙시장인가 과일 파는 시장이 있어서 구경하다가 그렇게 맛있다고 유명한 납작 복숭아도 몇 개 샀다. 목이 언니랑 나눠 먹으려고 샀는데 결과적으로 주는 거 까먹고 내가 다 가져갔다 바보같이ㅠㅠㅠ
이게 바로 납작봉숭아! 진짜 맛있음 근데 너무 물렁한 걸로 샀다ㅠㅠ
원래 7시 30분까지 만나기로 했는데 시장 구경하다보니 약속시간 보다 늦게 언니를 만났다. 잘 꾸미고 온 언니를 보니 내가 너무 대충하고 나온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언니는 나와줘서 고맙다며 언니가 미리 알아 놓은 식당으로 갔다. 언니가 겁나 배고프니 우리 많이 먹자고 그래서 진짜 많이 시킴!
술집 겸 식당인 곳이었는데 이르쿠츠크 핫플레이스 같더라 외국인은 우리밖에 없고 다 러시아인들 밖에 없었다.
러시아에 왔으니 샤슬릭을 먹어줘야 한다며 샤슬릭을 4개나 시키고 샐러드에 스테이크 하나 그리고 캌테일도 각 1잔 씩 시켰다.
다시 한 번 목이 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성격 이상한 동생인데 잘 봐줘서 고마워요ㅠㅠ
샤슬릭 그냥 꼬치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부리또 처럼 싸서 먹을 수 있게 채소랑 또띠야도 줬다. 그래서 계속 먹음 먹고 또 먹었다. 목이 언니가 오이를 안 먹어서 내가 샤슬릭 시키면 나오는 오이절임을 다 먹었다. 오랜만에 오이 먹는 거라서 행복ㅠㅠ 캌테일도 맛있게 먹고 스테이크랑 샤슬릭 냠냠하니 너무 배불러서 납작복숭아는 이따가 공원 가서 먹기로 했다. 근데 그러고는 까먹어서 내가 다 들고 감ㅋㅋㅋ 이 미친 기억력 좀 보소
식당에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조금 기다리다가 그칠 거 같지도 않고 비가 그리 많이 오는 편도 아니어서 그냥 맞기로 했다. 다행히 가려고 했던 마트가 가까이에 있어서 바로 마트로 향했다. 마트에서 내일 알혼섬에 들어 가면 먹을 것들을 조금 샀다. 목이 언니도 필요한 것들 조금 샀는데 내일 나 알혼섬 들어간다고 언니가 산 과일 말린 것도 나에게 줬다 감동 ㅠㅠ 나는 맨날 받기만 하는 그런 흐규규
마트에서 나오니 비가 그쳐 있었다. 그런데 꽤 많이 왔던지 아까 보다 공기가 제법 쌀쌀해졌다. 원래 언니랑 근처 공원 구경가기로 했는데 길을 잃어버리는 바람엨ㅋㅋㅋ 언니 숙소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언니가 어두운데 자기가 내 숙소까지 데려다 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ㅋㅋ 그래서 언니 숙소 바로 옆에 원래 가려던 공원이 있어서 공원에서 작별 인사 하고 서로 헤어졌다. 이렇게 좋은 인연을 여행하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여행 초반부터 나는 복을 받았나 좋은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그리고 숙소까지 가는데 장장 30분 넘게 걸은 듯. 갈때는 별로 멀지 않았는데 돌아가는 길은 멀었다. 그래서 가는 길에 납작복숭아 먹고ㅋㅋㅋ 가는 길에 분수도 보고 좋았다. 그래도 이르쿠츠크의 밤은 시내 쪽이 아닌 이상 어두워서 조심!
숙소에 들어와서 발 닦고 자려는데 같은 방에 단체로 왔는데 몽골사람인지 여튼 아시아계통 사람들 같아 보이는 아줌니들이 겁나 얘기하는 거. 각자 자려고 침대에 누웠으면서도 그냥 그대로 얘기함ㅋㅋ 그래도 나는 알혼섬에서 이르쿠츠크로 돌아오는 버스 인터넷 예매한다고 조금 늦게 자서 괜찮았다. 근데 먼저 자고 있던 내 옆의 2층 침대 여자분 한국 사람 같던데 불편했을 것 같더라ㅠㅠ
겁나 시끄러웠는데 내가 자려고 하니 잠잠해져서 잠은 잘 잤다.
그리고 이르쿠츠크로 돌아오는 버스도 잘 예약했음! 내가 예약한 게 후지르에서 이르쿠츠크로 돌아 오는 버스가 맞다면 말이다ㅋㅋㅋ 러시아어 모르니까 그래도 하라고 하는대로 예약했으니 제대로 됐다고 믿고 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의 여정은 좋고 좋음의 연속이었다.
여행 시작하고 처음 묵는 호스텔인데 예의없는 숙박객들 때문에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잠은 잘 잤으니 됐다ㅋㅋ
여행 8일 째도 이렇게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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