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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40] 조지아 여행 | 생각 정리하기, 트빌리시 아지트

김나무 2020. 12. 20. 22:06

 

벌써 여행 40일차.
August 19. 2017

 


어제 일찍 잤는데 오늘도 늦게 일어났다. 일찍 자던 늦게 자던지 간에 요즘에는 계속 늦게 일어난다. 매일 오전 9시 넘어서 일어나는 듯. 일어나서 폰 들고 뒹굴거리다 보면 어느새 10시.

오늘은 시그나기 갈까 했는데 늦잠 자서 예레반 다녀와서 가는 걸로.

이번 주 내내 설사를 해서 오늘은 한 번 굶어 보기로 했다. 다행이 일기 쓰는 지금까지 많이 배고프진 않다. 왜 자꾸 설사 하는 건지. 정말 물갈이 하는 건가ㅠㅠ 그것도 여기서 지낸지 삼주가 다 됐는데 그러네. 휴, 내일은 부디 괜찮길. 먹은 게 없어서 안 나오려나ㅋㅋ


숙소에서 어디갈까 고민하다가 그냥 생각을 안 하기로 했다. 한정된 돈에 갈수록 가고싶은 곳은 더 많아진다. 그냥 산티아고 순례길은 가을에 가지 말까 생각 중이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나란 사람 대충이라도 계획이 없으면 그냥 계속 트빌리시에 눌러 앉아 조지아만 여행할 것 같아서 오늘은 다음 여행지를 정하기로 했다.

일단 다음주에 예레반 갔다가 트빌리시에 돌아와서 시그나기 구경하고 고리-쿠다이시-메스티아,우쉬굴리-바투미 이런식으로 가서 터키로 넘어갈 것 같다.

갔다가 좋은 곳이 있으면 또 한참 동안 눌러 앉을지도 모른다. 사실 트빌리시에는 볼 게 많기도 하지만 숙소가 너무 편해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으아아아 정말 한 일주일은 숙소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었다.

여기 있으면 돈도 별로 안 들고 한국에 귀국하는 일정을 늦출 수 있겠지만 세상은 넓고 아직 볼 건 많기 때문에 더 밍기적 거리지 말고 떠나야겠다. 돈은 뭐 아껴 써야지. 다른 방법이 없다. 중간에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좋겠지만ㅠㅠ 워홀 비자를 따로 받아 오지 않은 걸 후회 중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어느새  오후 두 시. 대충 짐을 챙겨서 내 아지트인 동네 뒷산으로 향했다. 한 일주일만에 다시 온 듯.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산에 차 타고 와서 쉬는 사람들도 조금씩 보였다.


날씨가 많이 시원해졌어도 아직 낮에는 많이 덥기 때문에 어디 쉴만한 그늘이 있나 살펴보다가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여기는 쓰레기장인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을 법한 장소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이 아주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휴지에 담배꽁초에... 조지아 사람들 인성 이런 것인가요ㅠㅠ

거기 말고도 쉴만한 나무 그늘 아래에는 다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내가 이불 펴고 앉을만한 사리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ㅠㅠ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휴

그래도 경치는 좋다
나무 그늘 아래
다이소에서 샀던 얇은 이불은 오늘에야 개시함
비행기도 보고
오늘의 하늘은 구름이 많지만 그래도 예쁘다.


자리 펴고 앉아 있는데 그림자 위치가 조금씩 바뀌어서 자리가 불편해졌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이리저리 주변은 둘러봤다. 근데 다른 나무 그늘 아래에도 쓰레기 아니면 소똥이 있어서 그냥 더 먼 곳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괜찮아 보이는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았다.

숙소에서 들고 갔던 얼음물

자리가 넓지는 않았지만 좋았다.
흑백으로 사진 찍었더니 뭔가 있어보여
여기도 경치 좋구여
잘 쉼
저 멀리 므타츠민다가 보인다.

새로 찾은 자리에 앉아서 생각도 정리하고 노래도 듣고 책도 읽고, 글도 썼다. 한 낮에 가서 그런지 그늘 아래라도 좀 더웠다. 더워서 그런 건 아니었겠지만 잠이 솔솔 와서 그냥 누워서 잤다. 얼굴에는 쓰고 간 모자를 덮어놓고 잘 잤다. 얼마나 잤을까. 나무 그림자가 옆으로 이동해서 햇볓을 직빵으로 맞으니 다리가 아주 따뜻했다.


오늘은 하늘에 구름이 많이 끼어서 그런지 바람도 많이 불었다. 자는 중에 햇살은 뜨거운데 바람은 새차게 불어서 일어났다.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


그래도 생각보다 잘 자서 상쾌했다. 아까 생각한 것들을 한 번 더 되뇌이고 이젠 정말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트빌리시의 모든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 당장은 아쉽지 않다. 박수칠 때 떠나야지. 사실 예레반 갔다가 다시 돌아올 거긴 하지만ㅋㅋ


나는 원래 게으른 사람이지만 여행하면서 특히 조지아에 오고 나서 더 게을러 진 것 같다. 천천히 시간을 보낸다는 게 잘못된 건 아니다. 혼자하는 여행은 온전히 내 선택에 의지해 여행지에서 시간을 보낸다. 내 선택을 후회하진 않지만 이제 슬슬 떠나야할 것 같다. 여기도 좋지만 이만큼 좋은 곳을 아니면 더 좋은 여행지를 만날 수도 있을테니까.


다시 두근 거리는 가슴을 안고 오늘을 마무리 한다.

보라색과 분홍색 사이

 

여행 중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 쉬는 게 익숙해진 나에게 다시 선택할 시간을 갖게 하기.
여행도 선택의 연속이다.

 




※ 이 여행 일기는 2017-2018년 배낭여행을 하던 당시 실시간으로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다시 포스팅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