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6. 목요일
어제 일기를 쓰고 나서 열두 시 반쯤 잠들었다. 언니가 아침을 차려놓고 나를 깨웠다. 더 자고 싶었지만 일어나서 아침을 먹으니 잠이 깼다.
아침에 숙소 밖으로 나가서 봤던 풍경이 정말 예뻤다.
오늘은 어디에 갈지 따로 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숙소 주인에게 갈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세라핌 성당을 알려줬다. 주인아줌마는 영어를 잘 못하는데 아들이 영어를 잘해서 좋았다. 친절하게 조지아어랑 영어로 성당 이름도 적어 줬다.
나가기 전에 기차역에 가서 트빌리시 가는 기차 시간표를 확인했다. 트빌리시 가는 시간을 물어보니 아줌마가 친절하게 시간표도 알려줬다. 7시랑 16시 45분 기차뿐이었는데 보르조미 돌아보고 기차 타면 시간이 딱 맞을 것 같았다.
기차 시간을 확인 후 숙소에 짐 맡겨두고 공원쪽으로 갔다. 깜빡하고 얼음물을 안 가져와서 잠시 숙소에 돌아갔다 나왔는데 언니가 안 보였다. 길 건너편을 보니 동네 할아버지들 게임하는데 같이 있었다. 친화력 쩌는 언니! 할아버지들 주사위랑 병뚜껑으로 게임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몰라서 잠깐 구경만 했다.
할아버지들이랑 빠이빠이하고 공원 쪽을 향해 걷다 보니 표지판이 나왔다. 우리가 갈 예정인 세라핌!! 그 표지판 따라서 가기로 결정!
자동차가 많이 다니고 걸어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는 도로였다. 계속 은근한 오르막이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산 정상! 공원 가는 길에 봤던 관람차도 지나고 공원 입구에 있는 케이블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만난 택시 아저씨. 호객행위는 하지 않고 자기가 따 먹던 열매 열심히 따주심
잠깐 앉아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어제 산 빵이랑 복숭아!
점심을 먹으면서 언니랑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여행 이야기를 듣는 건 언제나 재밌다. 언젠가 나도 말로만 듣던 곳에 가는 날이 오겠지. 과거의 나는 26살의 내가 조지아를 여행하고 있을 거라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여행도 인생도 언제나 예측할 수 없다. 오늘만 해도 이렇게 걸어서 세라핌 수도원에 갈 거라는 걸 몰랐으니까.
점심을 먹고 다시 성당으로 가는 길. 얼마나 걸었을까 표지판이 나왔다. 숲 속으로 좀 더 걸어가니 성당이 나왔다.
바위 아래 매모지 들이 가득 꽂혀있다. 아마 소원을 적어서 끼워 넣어두면 이뤄지는 게 아닐까.
안을 들여다 보면 세라핌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곰이 그려진 그림이 있다.
밖에 기념품도 파는데 사람이 없다. 저기 있는 장식장 안에 돈이 있는데 거기에 돈을 넣으면 되는 듯
성당을 구경하고 언니가 기념품들 중에서 팔찌가 예쁘다고 하나 샀다. 처음에 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랐는데 장식장 안에 보니 동전이 있어서 거기에 돈을 두고 왔다. 사람이 없어서 그냥 들고 가도 모를 것 같았지만 교회에서 그러면 안돼! 나는 딱히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언니만 5라리짜리 팔찌를 샀다. 생각보다 퀄리티가 아주 굳굳.
수도원 화장실에 갔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안 쓴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아마도 다른 화장실을 쓰는 게 아닌가 싶음. 주변 숲이 울창해서 급한 볼일은 자연에서 해결했다ㅋㅋㅋ
다시 돌아가는 길. 아까 그냥 지나온 케이블카 구경하러 케이블카 타는 곳에 갔다. 근데 편도 4라리! 비싸서 안 탔지ㅋㅋ
매표소
언니는 한 번 갔던 길을 다시 가는 걸 안 좋아해서 내려가는 다른 길이 없나 봤는데 길이 나왔다. 내려가는 길은 포장된 길이었는데 오래됐는지 파지거나 갈리진 곳이 많았다. 그래도 나무가 울창한 산길을 따라 내려가서 시원했다.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가다 보니 케이블카가 있는 공원 쪽으로 가는 듯했다.
공원은 입장료가 있어서 어제 들어가지 않았는데 언니가 왠지 이 길이 공원이랑 연결돼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길이 그 방향인 것 같아서 조금 기대하고 있었는데 웬열 진짜 공원 내부랑 연결된 길이었다!
둘이서 공원 입장료 굳었다고ㅋㅋ 역시 여행은 우연의 연속. 올라갔던 길이랑 다른 길로 내려오려고 찾았던 길이 이렇게 좋은 선물을 줄 줄이야!
공원에 있는 약수터에 들러서 물을 받았다. 바깥에 있는 약수터에는 직접 물을 뜰 수 있었는데 여기는 물 떠주는 할머니가 있었다. 물통 가져가면 물통에 물을 받아 준다. 그냥 가면 컵에 마실지 물어보고 컵에 물을 떠주는데 나는 어제 이미 마셔봤기 때문에 패스ㅋㅋ
그러고 나서 언니가 공원에 노천온천이 있다고 해서 같이 갔다. 가는 길에 폭포랑 프로메테우스 동상도 보고 놀이공원도 지나갔다. 공원 내부는 생각보다 엄청 컸는데 입장료 받을만하더라.
노천온천까지는 걸어야 나온다고 해서 언니가 먼저 가고 나는 뒤를 따라서 가고 있었다. 점점 거리는 멀어졌자만 언니 가방이랑 뒷모습이 보여서 잘 따라가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배가 겁나 아프기 시작. 그래 이건 폭설의 느낌이라 근처 화장실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어... 다행히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가 있어서 휴
계속 언니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짐ㅋㅋㅋ 그래도 길이 하나뿐이라 별 걱정 없이 계속 걸어갔다. 근데 계속 걸어도 나올 기미가 안 보여ㅋㅋ 그래도 어째 걸어야지. 그래서 계속 한참을 걸어 산을 넘고 강을 건넜더니ㅋㅋㅋ 표지판이 나왔다.
드디어!!! 빨간 표시는 아마도 뜨거운 물인가. 너무 멀어서 가까운 곳으로 감
언니도 가까운 곳으로 갔을 것 같아 계속 직진했다. 그리고 나온 노천탕. 근데 온천 같아 보이진 않고 그냥 수영장처럼 보였다. 화장실이 급했기 때문에 수영은 하지 않아도 화장실 사용하려고 입장료 5라리 내고 들어갔다.
언니 어딨어요?!! 여기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서 화장실만 사용하고 금방 나왔다. 돌아가는 기차 시간이 임박해서 아주 빨리 걸어갔다. 근데 가는 길에도 언니가 안보임ㅋㅋ 서로 연락처도 몰라서 걱정하면서 내려갔는데 역시나 공원 입구에도 없구ㅠㅠ
숙소에 집을 맡기고 왔으니 숙소에 있겠지 하고 숙소에 갔더니 언니가 딱!!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정말 타이밍 기가 막히게 서로 못 찾고ㅋㅋ 숙소에서 주인아줌마랑 빠이빠이 하고 나왔다.
공원 가는 길에 도넛 집이 있는데 언니가 그게 그렇게 맛있다고 했다. 아까 사서 너무 맛있어서 다 먹었다고ㅋㅋ 도넛 하나에 0.20라리! 도넛 열 개정도에 음료수도 샀다. 따뜻할 때 바로 먹으니 넘나 맛있음ㅠㅠ 한국에 가져오고 싶은 맛!! 도넛은 기계가 만들고 있었는데 싱기방기 했다.
기차 시간이 다 돼서 바로 기차역으로 갔다. 역에 가니 벌써 기차가 서 있었다. 기차는 티켓 끊을 필요 없이 들어가서 빈 자리 아무 데나 앉으면 된다. 마슈르카만 타다가 기차를 타니 역시 좌석이 넓어서 좋음. 근데 깨끗하진 않아 냄새도 조금ㅋㅋ 그래도 이 정도 시설이면 짱짱맨이지! 당연히 에어컨은 없어요ㅋㅋ
엄청 넓다.
기차 타고 사진 좀 찍다 보니 출발했다. 나는 동전 있어서 기계로 티켓 뽑고 언니는 직원 지나가길 기다렸다. 다른 사람들은 보아하니 현지인들은 기계를 잘 사용 안 하는 듯?? 근데 직원 아저씨가 지나갈 때 보니까 잔돈 없으면 그냥 기다리고 기계 사용할 사람들은 사용하고 그러는 것 같았다. 나는 티켓 보여주니 영수증 위쪽 조금 찢어서 주더라. 아마도 확인했다는 표시인 듯ㅋㅋ
기차는 에어컨이 없는 대신에 창문이 있다. 그래서 생각보다 덥지는 않았다. 의자도 넓은 편이고 아주 푹신푹신. 근데 궁뎅이에 땀이 차서ㅋㅋㅋ 오는 길에 고리역까지는 자다가 그 이후는 책을 읽었다. 기차가 좋은 게 책도 읽을 수 있다는 것! 아직 버스는 책 읽으면 멀미남ㅠㅠ
그리고 언니랑 디두베역에서 내려야 하니까 어디쯤 왔는지 계속 맵스미 보고 얘기했다. 언니는 내일 카즈베기 갈 예정. 언니랑 같이 메스티아 가기로 해서 나는 주그디디행 야간 기차 알아보고 표가 있으면 이번 주 일요일 저녁에 출발하는 걸로 예매하기로 했다. 아아 이렇게 예정대로 되면 이번주 일요일 드디어 트빌리시를 떠난다.
벌써 한 달 정도 트빌리시에 있었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그래도 더 이상 떠날 날을 늦출 수는 없지. 시간 참 빠르다.
그리고 아홉 시 다 돼서 디두베역에 도착! 디두베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렸다. 조지아에서 처음 탄 기차였는데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생각보다 괜찮았음 무엇보다 싸서 좋았다. 단 돈 천 원에 보르보미에서 트빌리시까지 오다니! 마슈르카 타면 삼천 원 정도.
언니랑 같이 맥주랑 음료수, 물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아까 삼촌이 페북 메시지로 밥이랑 찌개 해놨다고 해서 얼른 숙소로 갔다. 하루 자고 왔는데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호스텔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삼촌이 언니랑 나를 반겨주고 얼마 전에 봤던 일본인들이 인사를 해준다. 여행하면서 이렇게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에 있다는 것도 정말 행운이다.
개운하게 씻고 나서 저녁을 먹었다. 오늘 하루 종일 걸었더니 배가 과서 열 시가 넘은 시간에 밥이랑 찌개랑 한 그릇 가득 퍼서 먹었다. 아까 맥주를 사 왔는데 언니는 내일 카즈베기 가니까 일찍 나간다고 해서 맥주 안 마신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술 타임 노노.
오늘은 일본인들이 9명이나 체크인했는데 나랑 언니는 가기 전에 미리 예약해두고 가서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친절한 마나나 오늘도 고맙다.
익숙한 곳에서 보내는 밤. 삼시세끼에 동상이몽까지 챙겨보고 잔다. 이 시간이 평화롭고 또 행복하다.
내일은 빨래하고 기차역에 가서 시간 확인하고 티켓 예매해야지!
※ 이 여행 일기는 2017-2018년 배낭여행을 하던 당시 실시간으로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다시 포스팅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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