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30. 일요일
벌써 러시아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저녁이다. 내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조지아에 간다. 생각했던 것보다 러시아에서 보낸 시간들이 너무나 좋아서 떠나기 아쉽다. 근데 이 아쉬움을 남기고 떠날 수 있어서 좋다. 다음에 또 러시아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장기 여행을 시작한 나라인 러시아는 나에게 너무나 친절했고 내가 멍청하게 덜렁대지 않았다면 잃어버린 물건도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소매치기 걱정 전혀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다.(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임)
주위에서 러시아는 무섭지 않냐며 여행 출발 전 간혹 그런 얘기를 듣곤 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한 러시아는 위험하지도 않았고 인종 차별하는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여행 후기지만 러시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은 주저하지 말고 즐겁게 여행 준비를 했으면 좋겠다.
나는 블라디보스톡-이르쿠츠크,알혼섬-모스크바 일정으로 20일 동안 러시아 여행을 했다. 더 오래 있지 못해서 아쉽고 중간중간 크고 작은 도시들을 더 많이 둘러보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기차에서 무려 7일 동안이나 밤을 보냈으며 난생처음 카우치서핑 게스트가 되었고 친절한 러시아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나는 아직 내 마음을 많이 열지 못했다. 나에게 아무 댓가 없이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많이 부끄러웠다. 나는 뼛속까지 이기적인 사람이라 아직 정신 차리려면 멀었다. 여행 초반이지만 너무 좋은 사람들만 만났다. 언젠가 나도 낯선 여행자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오늘이다.
내일 공항에서는 섭섭할 것 같다. 그렇지만 다음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너무 주저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 여행지는 조지아 트빌리시. 여행 일정을 따로 짜둔 게 아니라서 좋은 곳을 발견하면 더 오래 머무르고 여행을 일상처럼 그렇게 지내고 싶다.
마지막 날이라 감성포텐 터져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이제 오늘의 일기를 쓴다. 2017년 7월 30일 일요일. 모스크바에서 마지막 여행.
오늘은 어제 세탁기 사용을 못한 관계로 일찍 일어나서 빨래를 했다. 근데 역시나 그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다. 세탁실에는 사용할 수 있는 세탁기, 건조기가 한 대씩 밖에 없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라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결제하고 이용이 가능한데 어떻게 결제해야 하는지 몰라서 리셉션을 두 번이나 왔다 갔다 아침부터 난리도 아니었다. 결국 잘 몰라서 직원 언니 세탁실로 불러서 사용법 배움... 아침부터 얼마나 부끄럽던지ㅋㅋㅋㅋ 나는 카드 결제하는 건 줄 알았는데 지폐 넣어서 하는 거라고 아놔ㅋㅋㅋ
결국 빨래는 건조까지 잘 끝냈다. 직원 언니가 약간 띠꺼워 하는 것 같았는데 그건 내 착각인 듯 여기 직원들은 엄청 착하다ㅠㅠ 방에 있는 사람들도 서로 별 터치 안 하고 좋음. 다만 세탁기 사용료가 조금 비싸다. 세탁기는 150 루블, 건조기는 100 루블이다. 합해서 250루블! 빨래하는데 아침부터 5천 원 씀ㅋㅋㅋ
그렇게 빨래만 잘 끝냈으면 모르겠는데 현금 들어 있는 지갑을 잃어버렸다... 잔돈이 없어서 슈퍼에 돈 바꾸러 갔다가 세탁기 사용료 결제 후 화장실에 들렸는데 지갑을 그냥 두고 나온 것. 근데 그것도 방에서 한참 있다가 생각나서 다시 화장실에 감ㅋㅋㅋ 당연히 없지ㅠㅠㅠ 그래서 혹시나 리셉션에 가봤더니 아침에 세탁기 사용법 알려준 언니가 내 지갑을 똭!! 나는 당황해서 어버버 했다ㅋㅋㅋ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ㅠㅠ어떤 여자분이 가져다주셨다고 하더라. 역시 러시아 사람들 너무 친절해요 아침부터 천국과 지옥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더니 어찌나 피곤하던지.
12시가 돼서야 빨래가 끝났다. 뽀송하게 잘 마른 빨래를 개고 배낭을 정리했다. 오늘은 내일 출발하는 비행기 온라인 체크인 오픈하는 날이라서 체크인을 했다. 그런데 그런데 또 문제가 생김ㅋㅋㅋ 내 여권 정보가 자꾸 러시아 여권에서 수정이 안 되는 거... 그래서 S7 항공사 페북으로 메시지 보냈더니 자기네가 확인할 때는 수정된다고ㅋㅋ 혹시나 더 필요한 거 있으면 전화하라고 답장이 왔다. 일요일에도 칼 답해줘서 완전 감동ㅠㅠ 근데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어! 자기도 영어 가능한 직원이라서 대표전화로 전화해서 물어보라는데 전화하니까 러시아어 대잔치라서 걍 끊음ㅋㅋㅋ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체크인에 성공함! 처음에 살 때 수하물 추가 안된 특가 항공권을 사서.. 4만원 가까이 주고 수하물 추가했다ㅠㅠ 댕청함은 오늘도 빛을 바란다. 일단 체크인 성공했는데 내일 공항 가서 별 문제없기만을 바란다. 갑자기 알혼섬에서 나오는 날 버스 티켓 잘못 예매해서 티켓 다시 산 게 생각난다. 그때는 버스비가 얼마 안 해서 상관없었는데 이번에는 안돼... 비행기표 십만 원 넘는다고... 제발 별 탈 없길!!
그리고 피곤해서 한 숨 잠ㅋㅋㅋ 오늘은 숙소에서 바나나 두 개랑 과자랑 음료수만 챙겨 먹고 아무 것도 안 먹었다. 어제 먹었던 시리얼 먹으려고 했는데 웬열 우유가 몽글몽글 발효돼서 못 먹었다. 냉장고에 넣을까 하다가 그냥 방에 갖다 놨는데 유통기한 임박 제품이라 바로 상함ㅋㅋㅋ 아... 진짜 돈을 길바닥에 뿌리는 중이다. 이어폰도 잃어버리고 샤워용품이랑 로션도 다 잃어버리고ㅋㅋㅋ 러시아에서 20일 동안 여행하는데 한 몇 달은 있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돈을 너무 많이 썼다. 근데 오늘 마지막 날이라고 피자 먹으러 감ㅋㅋㅋ
한참 자다가 일어나서 6시 쯤 돼서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피자가 먹고 싶어서 숙소 바로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가서 메뉴판을 봤는데 역시나 너무 비쌈ㅋㅋㅋ 근데 그냥 제일 비싼 비자로 한 판 시켰다. 역시 피자는 혼자서 한판 다 먹어야지!!! 그리고 피자가 나왔는데 겁나 큰 거ㅋㅋㅋ 메뉴판 다시 보니 40cm짜리 피자라고 적혀 있었다. 뭐냐 이거ㅋㅋㅋ 그래도 도우가 얇은 이태리 피자라서 꾸역꾸역 먹었다. 처음엔 맛있었는데 나중에는 역시나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더라. 그래도 아까워서 한 조각 남기고 다 먹었다.
창가 바로 옆 자리!!
무슨 해산물 토마토 소스, 모짜렐라에 풀떼기 올라간 피자였는데 풀에서 쓰고 맵고 고소한 맛이 났다. 얼마나 신기하던지! 근데 풀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다ㅋㅋㅋ(+2020년,지금보니 이름모를 풀떼기는 루꼴라였던 걸로ㅋㅋ)
진짜 배터지게 먹어서 원래 저녁 먹고 바로 숙소에 들어가려 했는데 산책할 겸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오늘도 붉은 광장을 갈까 하다가 안 가본 길로 가기로 했다. 역시나 배부르게 먹고 산책하면 기분 넘나 좋음. 러시아에서 오늘처럼 여유롭게 걷는 것도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도 마지막 날 예쁜 풍경 노을을 봐서 오늘도 기분이 좋았다. 아침부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일단은 모두. 잘 끝낸 것 같으니 오늘은 기분 좋게 잘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모스크바 시내를 지나는 강도 보고 다시 붉은 광장쪽으로 돌아와서 숙소까지 왔다. 오늘은 저녁에 숙소에서 나왔는데 그래도 그 사이 만보를 걸었다. 별 거 안 하는 날에도 그 정도는 걷는 듯. 근데 오늘 걷는데 무릎이 아파서 걱정 휴, 산티아고 순례길 가야 하는데!! 내 무릎아 아프지 말아 줘ㅠㅠ
그리고 오늘 찍은 사진들
그렇게 아홉 시 반 넘어서 숙소에 도착!
방에 아래층에 있는 러시아 남자애가 갑자기 내 이름 부르면서 혹시 이어폰 잃어버렸냐고 물어봤다. 엥, 나 기차에서 잃어버렸는데 어찌 알고ㅋㅋㅋ 그래서 무슨 이어폰? 물어보니까 의자에 올려둔 거 보여줬다. 그래서 봤더니 내가 어제 산 이어폰 보여 주면서 혹시 니 이어폰이냐고ㅋㅋㅋ 그래서 내 거 맞다고!! 스파시바 남발했다ㅋㅋㅋㅋ 이름이 안드레였던가.. 이름 제대로 기억 안 나서 미안ㅠㅠ
여튼 마지막 날까지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친절한 러시아 사람들 때문에 오늘도 이어폰이랑 돈이랑 다 구할 수 있었다. 나도 착하게 살아야지.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일찍 자야겠다.
안녕, 모스크바
안녕, 러시아. 나중에 또 보자!
※ 이 여행 일기는 2017-2018년 배낭여행을 하던 당시 실시간으로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다시 포스팅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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