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03. 금요일
어제저녁 오랜만에 라디오 스타 본다고 늦게 잤다. 그래도 오늘은 다행히 8시 30분쯤에 일어났다.
실은 일어나서 사메바 성당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적 갈등이 심했는데 그래도 게으름을 물리치고 숙소를 박차고 나왔다. 아침으로 바나나랑 복숙아 하나씩 먹었다. 물이 들어 있지 않은 물통을 들고 숙소를 나와 비포장도로를 얼마나 걸었을까.
사메바 성당 가는 길이라고 표지판이 보였다.
올라가는 길은 두 군데로 나눠져 있었는데 나는 앞사람들이 가는 길과는 다른 쪽으로 선택했다. 메밀꽃 부부님 블로그 보고 힘든 코스로 올라가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결국 힘든 길을 선택했다. 사서 고생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얼마나 걸었을까 힘들어서 쉬고 또 쉬고 계속 쉬었다. 누가 보채는 사람도 없고 무슨 등산대회 나가는 사람도 아니니 천천히 쉬면서 올라가기로 했다.
가는데 한 시간 정도밖에 안 걸린다고 해서 물통에 물을 채워가지 않았다. 성당에 올라가면 약수터처럼 물 마실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그냥 갔는데 바로 후회했다. 그래서 쉴 때마다 온몸에서 줄줄 흐르는 땀 다 식을 때까지 계속 앉아 있다가 다시 출발했다. 그렇게 한 세, 네 번 정도 반복했을까 정상에 거의 다 왔을 때 즈음 쉬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힘든 일을 해야 할 때 그게 급한 일이 아니라도 빨리 해치우고 나서 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근데 나는 급한 일이 아니라면 도착지점까지는 어차피 계속 힘들 테니 중간중간 쉬어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오늘 산을 오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등산하면서 이런 생각 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낯선 여행지에서 내가 뭘 더 좋아하는지 하나 알게 됐다. 사람은 떠나봐야 비로소 나 자신을 더 잘 볼 수 있는 걸까. 아직 내가 여행할 날이 많이 남았는데 나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어!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 하며 쉬다가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근데 거기가 깔딱 고개였는지 게까지 올라가는데 정말 엄청 힘들었다. 그리고 정상에 도착! 하기 전에 성당 아래에 있는 십자가 앞에서 또 한 참 동안 쉬었다. 물이 마시고 싶었지만 쉬지 않고는 도저히 거기까지 갈 힘이 나지 않아서 쉬었다가 천천히 성당으로 갔다.
카메라로 내가 본 경치를 전부 담을 수가 없어서 아쉬울 뿐ㅠㅠ
중간에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무사히 사메바 성당 정상에 도착!
성당으로 올라가기 전에 성당 아래에 있는 화장실에 들렀다 그리고 한쪽에 마련된 약수터 같은 곳에서 물을 받아 마셨는데 이야~ 이거 물 맛 완전 끝내주는구만?! 그렇게 맛있는 물 정말 오랜만이었다. 연거푸 몇 번이나 더 마시고 사메바 성당으로 갔다.
종교는 없지만 예의는 갖춰야 할 것 같아서 성당에서 여자들은 치마처럼 입을 수 있게 마련해준 보자기 같은 걸 두르고 성당으로 들어갔다. 근데 치마도 입고 머리도 가려야 했음ㅋㅋ 러시아 갔을 때도 멍 때렸는데 이번에도 역시 하나는 했지만 나머지 하나는 빼먹고 그냥 들어갔다. 근데 관광지라서 그런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사실 사메바 성당을 보는 것 자체는 별로 기대를 안 해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었다. 빠르게 성당을 둘러보고 다시 내 사랑 약수터가 있는 곳 근처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앉아서 바나나도 까서 먹고
물도 마시고 그림도 그리고 그냥 멍 때리다 보니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늘에 계속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까 슬슬 추워졌다. 바람막이를 가져가서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추워서 그늘을 벗어나 다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사실 처음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풍경이고 뭐고 그냥 쉬고 싶었다. 근데 푹 쉬고 난 후에 돌아다니면서 경치를 보니 정말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웅장하고 예뻤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다시 더워져서 내가 쉬던 쉼터로 다시 이동!
그늘 아래는 여전히 시원했다. 가져간 사과 하나를 씻어서 배어 물었는데 으아아아 겁나 쌔그러워서ㅋㅋㅋ 그래도 다 먹음.
아오리 사과같이 생겨서 2개 샀는데 너무 쌔그러워서 이가 시리더라.. 요즘 신 과일들 많이 먹어서 내 치아 다 상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ㅠㅠ 갑자기 걱정되고요
그렇게 얼마나 쉬었을까 점심도 제대로 먹지 않고 등산을 했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 그만 내려가기로 했다.
오늘은 아침, 점심 동안 과일이랑 물만 마심....
올라왔던 길과 반대쪽으로 내려가려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형태의 사람이 저 멀리서 걸어 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총각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으며 나를 봤다. 그리고 나도 그를 봤다. 그 순간!! 아, 트빌리시 숙소에서 인사를 나눴던 일본인 쇼지구나 알아봤다. 얼마나 반갑던지!! 만세하며 인사했는데 둘 다 영어로 대화 하려니 반가움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거 같아서 아쉬웠다. 사실 쇼지 이름 까먹고 있다가 이렇게 다시 만나서 다시 물어봐서 알았다ㅋㅋ 같이 사진 한 방 찍고 자기는 오늘 바로 트빌리시로 넘어간다고! 그래서 나는 쇼지에게 잘 보고 가라며 바이바이 인사하며 반갑고 또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나는 배가 고프니까 빛의 속도로 내려갔다. 자동차가 올라오는 길로 내려갔는데 어찌나 흙먼지가 많이 날리던지...조금 내려갔더니 사람이 다니는 길이 있어서 그쪽으로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실 길은 잘 모르지만 모든 길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 믿으며 슉슉 내려갔다. 올라올 때보다 걷기 편한 길이라서 정말 좋았다.
내려가는 도중에 말 타고 가는 언니를 봤는데 내가 혼자 내려가고 있으니 혹시 도움이 필요하냐고 해서 내가 단호하게 노!이러고 빠이빠이함ㅋㅋ
그리고 또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러시아 오빠가 인사하더니 여기로 가면 성당으로 가는 길 맞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맞다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자동차 도로 나오는데 쭉 따라 올라가면 된다고 얘기해줬다. 그리고 나서 러시아 오빠가 고맙다고 하면서 사실은 자기 여자친구가 조금 있으면 생일인데 영상 메시지 찍어줄 수 있냐고 묻는 게 아님? 그랫 당근이지! 뭐가 어렵다고 하며 영상도 찍음ㅋㅋㅋ 뭐랬더라 여자친구 이름이 폴리나?폴린? 이었나 여튼 영상 내용이 '해피벌쓰데이 폴리나, 아이엠하니, 아이엠프롬코리아, 비해피, 한국어로 행복하세요!' 이렇게 말해줬다. 내 기억력 쩐다능ㅋㅋㅋ 그렇게 룰루랄라 영상 찍고 내가 러시아 오빠한테 내려가는 길 험하냐고 물었더나 쏘쏘 하담서ㅋㅋ 그래서 믿고 잘 내려감.
내려오는 길 중간에 돌멩이 많은 구간이 있어서 조금 조심하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평탄한 내리막 길이었다. 그렇게 얼마 걷지 않아서 마을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계속 길을 따라 걸어가니 아침에 내가 출발했던 그 마을에 도착했다. 내가 내려왔던 길은 내가 올라갔던 길 바로 옆에 있던 마을을 지나서 가는 길이었다. 싱기방기 하면서 룰루랄라 숙소까지 갔다.
나는 너무 피곤했던지라 숙소에 도착해서 씻지도 않고 바로 뻗었다. 한 두 시간쯤 잤을까. 배가 고파서 일어났다. 원래 숙소에서 휴대폰 충전하고 바로 나가서 밥 먹으려고 했는데 실패... 숙소 넘나 편한 것..
저녁 먹을 시간이 돼서 밖으로 나왔다. 여섯 시쯤 돼서 나왔나 시내 쪽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거기 식당이 맛있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주문 한 번 하기가 왜 그렇게 힘이 들던지ㅠㅠ 서빙하는 아재들 다 바빠서 두 번이나 주문한다고 눈 마주치면서 손짓했는데 안 옴ㅋㅋㅋ 그래서 세 번 째만에 주문 성공하고 음식 나오길 기다렸다. 음식은 정말 빨리 나왔다. 대신에 같이 시킨 음료수는 늦게 나옴ㅋㅋ 나는 레모네이드 뭐시기 시켰는데 탄산 포도 음료가 나왔다. 그것도 조지아 음료겠거니 하고 잘 마셨다. 근데 시원하고 달달하니 넘나 맛있었음!!
오늘은 샐러드랑 고기 요리 그리고 음료수까지 총 21라리 썼다. 돈 아주 펑펑 쓰는 중ㅋㅋ
저녁에 몰아 먹는 거라고 맨날 거하게 먹고 있다.
조지아 샐러드에 마요네즈!
조지아 샐러드는 토마토, 오이, 양파만 들어갑니다 위에 고수도 살짝 뿌려줌!
돼지고기, 감자 맛있다! 근데 너무너무너무 짜!!!ㅋㅋㅋㅋ
그렇게 얼마나 먹었을까. 갑자기 배가 부르기 시작하더니 음료수를 먹은 후에는 급격하게 배가 불렀다. 그래도 의지의 한국인 오늘도 남기고 돌아갈 순 없지! 꾸역꾸역 돼지고기 다 먹고 토마도 몇 개랑 감자만 조금 남기고 왔다. 음료수는 당연히 클리어! 근데 감자랑 돼지고기 너무 짜다... 샐러드에 오이랑 토마토 없었으면 죽을 뻔...ㅋㅋㅋㅋ
계산할 때까지 서빙하는 아재 겁나 시크한 것..
배통통 두드리며 잘 먹고 나와서 마트로 갔다. 내일 먹을 것들 조금 사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벌써 8시가 넘은 시간ㅠㅠ
시원하게 샤워하고 와서 블로그에 일기 쓰고 나니 벌써 열 시 반... 오늘은 새벽에 별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수고했어^^
※ 이 여행 일기는 2017-2018년 배낭여행을 하던 당시 실시간으로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다시 포스팅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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