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04. 토요일
게으름이 절정에 달한 여행자는 오늘도 늦잠을 잡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계속 뒹굴 거리다가 10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오늘은 계속 침대에 콕 박혀 있고 싶었다. 오늘은 그냥 빨래하고 내일 트빌리시로 돌아가는 날이라 정리도 좀 하고 쉬고 싶었다. 그래서 숙소에서 빨래도 하고 쓰레기도 버렸다.
아침은 어제 샀던 초코 요거트랑 바나나를 먹었다. 원래 초콜렛은 잘 먹지 않는데 바나나랑 같이 먹으니까 진짜 맛있었다. 요거트는 요거트인데 초코 맛만 난다. 싱기방기ㅋㅋㅋ
러시아 수입품ㅋㅋㅋㅋ
초코 떠먹는 느낌!
내가 묵고 있는 숙소 이름은 이네자의 집인데 지금 숙박 관리는 이네자의 딸인 잉가가 주로 하는 것 같았다. 이네자 아줌마는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목소리만 들어봤다. 맨날 잉가랑 잉가의 아버지랑만 인사함ㅋㅋ
오늘 잉가가 내일 내가 떠나는 날 맞는지 확인하러 왔다. 그래서 맞다고 나는 내일 떠난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빨래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까 당연하지 라면서 세탁기 쓰면 된다고 해서 빨랫감을 주섬주섬 들고 세탁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근데 세탁기 사용비 5라리라고!! 뭐가 그리 비싼가... 마나나 아줌니 집에 가면 그냥 세탁기 쓸 수 있는뎅... 그래도 갈아입을 속옷이 없었던 관계로 세탁기를 사용했다. 손빨래하기 귀찮은 것ㅋㅋ 오늘은 어제보다 하늘에 구름이 많이 보였는데 그래도 날씨가 좋아서 빨래는 잘 마를 것 같았다. 빨래를 널고 점심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조지아 피자를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생각보다 비싸더라ㅠㅠ(조지아 물가 기준으로 카즈베기는 관광지라 물가가 조금 비싼 편! 당연 숙박비가 비쌉니다.) 그래도 치즈가 들어간 피자 같은 거 하나랑 음료는 레몬에이드 배맛으로 시켰다. 여기는 신기한 게 음료 이름은 레몬에이드인데 종류가 포도, 배, 레몬 등 여러 가지로 나눠져 있다. 나는 배랑 포도맛 먹어봤는데 둘 다 맛있음!! 그리고 음식 나올 때까지 경치 보면서 쉬었다.
카즈베기는 큰 도시가 아니라 작은 마을인데 그래서 호텔, 호스텔에서 식당을 같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점심을 먹었던 식당도 2층에는 숙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음식 나오길 기다리면서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정말 이 동네는 어딜 가든 경치가 좋다.
식당에 무궁화 있어서 사진 찍음!!! 무궁화 같이 생겼는데 맞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ㅎㅎ
그리고 음식이 나왔다!!! 근데 오늘도 양이 너무나 많은.. 오늘은 피자 같이 생긴 거만 시키고 남길까 봐 샐러드는 안 시켰는데 후회 만땅ㅠㅠ
조지아 전통 음식이라는데 치즈는 짜고 느끼하고... 꿀이 있으면 고르곤졸라 피자처럼 찍어 먹었을 텐데 아무것도 없이 그냥 음료수랑 피자만 먹음...느끼하자...짜다...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리운 요즘
오 첫 때깔부터 느끼하다고 쓰여 있구나!!
한 번 먹어보도록 하지요
결국 남김ㅠㅠ 잘라 놓은 조각들 합치면 거의 피자 한 판 크기! 더 이상은 못 먹겠더라ㅠㅠ
그렇게 속 니글니글하게 기름칠하고 나니 탄산음료를 마셔도 계속 느끼했다. 배가 부르게 먹은 후 숙소로 돌아갔다. 오늘 사메바 성당 쪽을 바라보니 어제보다 구름이 많이 보여서 어제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 들어와서 한 두, 세 시쯤 됐나? 바로 낮잠 타임ㅋㅋㅋ 여기 스페인인가요. 시에스타 있는 것도 아닌데 어제, 오늘 낮잠에 푹 빠져 지낸다는..
그렇게 얼마나 잤을까 저녁때 다 돼서 일어났다ㅋㅋㅋㅋ 밖에 구름이 많이 끼어 있어서 빨래를 걷었다. 거의 다 말라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저녁 먹으러 나감ㅋㅋㅋ
저녁은 케밥 같이 생긴 거 먹으러 갔는데 한 군데 그렇게 파는 곳이 있었다. 다른 가게들도 shamarka?(정확하지 않음ㅋㅋ)라고 해서 간판이 있었는데 다 장사를 안 하더라ㅠㅠ 그래서 마슈르카 타는 곳 옆에 있는 식당에 갔다. 스탠다드로 하나 샀는데 하나에 7라리였다. 가격대는 괜찮았다! 케밥처럼 고기랑 야채 넣고 만드는 것 같았는데 스탠다드도 크기가 엄청 컸다.
그리고 다 된 거 봉지에 담아 달라고 해서 숙소에 돌아왔다.
지금까지 카즈베기에서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었다!!!
숙소에 돌아와서 남은 사과랑 복숭아도 깎아서 같이 먹었다. 근데 생각보다 케밥 같이 생긴 게 양이 너무 많아서 다 먹는다고 고생했다ㅋㅋ 오늘 점심, 저녁 모두 본의 아니게 폭식했다는ㅠㅠ
근데 오늘 먹었던 저녁이 카즈베기 와서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었다. 안에 고기도 많이 들어 있고 오이, 양상추, 토마토, 케첩이랑 마요네즈 소스까지 조화가 완전 좋았음! 그래서 꾸역꾸역 다 먹었다능ㅋㅋ 내일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사 먹어야겠다. 지금 남은 돈 딱 17라리 정도 되는데 돌아가는 차비 10라리 빼면 7라리 남으니까 딱 점심으로 사 먹고 가면 되겠다!
오늘은 거의 숙소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이것도 좋다. 게으른 여행자는 숙소를 벗어나는 게 힘듭니다ㅠㅠ
저녁 먹은 후에 신서유기를 보고 있는데 밖에 비 오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 오고 그쳤지만 비 내리는 그 짧은 순간에 들리던 빗소리가 어찌나 좋던지.
사실 카즈베기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엄청 더 좋다거나 환상적이진 않다. 어제 새벽에 본 별들은 내가 청송에서 봤던 것보다 예쁜지 모르겠다. 그리고 동네 도로에는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장난 아니라서 코딱지가 까맣다. 근데 그냥 웅장한 카즈베기 산이 주는 풍경이 좋고 느리게 흘러가는 이 곳의 시간이 좋다. 여행지에서 뭐 많이 보고 느끼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나는 여행지에서 보내는 이 느린 시간이 좋다.
시간이 지난 후에 더 많이 보고 오지 못했다는 것에 후회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이 노래,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머뭇거리며 쑥쓰럽게 식당에 들어가는 것도 소똥 냄새가 나는 골목을 지나 숙소로 돌아오는 길도 좋다.
여행의 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온전히 내 생각에 달려있다. 내 스스로가 여행의 특별함을 만든다. 내가 머물렀던 지역, 나라를 떠난 후에 그곳에서 느낀 것들과 조금의 환상이 섞여 나만의 추억으로 남는다. 그렇게 나의 여행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된다. 지금 내 귀에 들리는 풀벌레 소리, 내 피부로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 내 눈 가득 쏟아질 듯 웅장한 풍경. 지금은 이 모든 것을 밖에 나가면 바로 보고 느낄 수 있지만 내일 이곳을 떠나면 이제 내가 찍은 사진과 영상으로만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쉽지는 않다. 내가 보낸 시간에는 내가 있었으니까. 그 시간이 게으르게 흘러갔을 지라도 내가 선택한 나만의 여행을 보내는 방법이니까.
오늘도 잘 쉬었다.
카즈베기, 흔한 숙소 뷰
※ 이 여행 일기는 2017-2018년 배낭여행을 하던 당시 실시간으로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다시 포스팅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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