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나기(Sighnaghi)
28.08.2017, 화요일
오늘은 시그나기로 당일치기 여행을 가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 나기 싫어서 뒹굴 거리다가 무거운 눈꺼풀을 손으로 슥슥 비비며 눈을 떴다.
삼고리 정류장에서 시그나기에 가는 버스가 9시부터 있다고 해서 여덟 시쯤에 숙소를 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Guramishivili역에서 Samgori까지는 30분 정도 걸렸다. 거의 끝과 끝 역이라서 시간이 오래 걸릴까 봐 걱정했는데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삼고리역에서 밖으로 나오면 시장이 있고 마슈르카 타는 곳이 있다. 거기에서 시그나기? 라고 물어보면 저기 끝으로 가라고 알려준다. 그렇게 두, 세 번 정도 더 물어봐서 시그나기에 가는 마슈르카를 탈 수 있었다. 삼고리역에는 버스정류장이 여러 곳 있는데 시그나기 가는 차를 타려면 역에서 나온 후 제일 끝에 있는 정류장으로 가면 된다. 그냥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
현금이 없어서 돈을 뽑고 마슈르카를 탔다. 시그나기까지는 단돈 6라리. 꽤 좋은 마슈르카를 탔는데 17인승임에도 불구하고 마슈르카는 사람들이 다 차기도 전에 9시가 되니 출발했다.
이런 적 처음이야. 그래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어제 같은 숙소 쓰는 선생님과 삼촌이 시그나기에서 내리지 말고 보드베 수도원에서 내리라는 팁을 알려줘서 보드베에서 내렸다. 두 시간 정도 가면 시그나기에 도착한다.
같은 차를 탔던 조지아 아줌마가 보드베에서 내리길래 보드베 맞는지 물어보고 내렸다. 돈은 차에서 내릴 때 기사 아저씨에게 주면 된다.
같은 마슈르카를 탔던 외국인 언니 2명도 같이 내렸다. 눈인사한 후에 성당이랑 수도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오늘도 반바지에 모자 차림이라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딱히 들어가고 싶지 없어서 사진만 몇장 찍고 삼촌이 알려준 성수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돌계단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작은 성당이 있다. 그 옆에 조그마한 약수터가 있는데 그 걸 성수로 부르고 있었다. 성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물도 받아 마시고 그 작은 물줄기에 머리도 감고 몸을 씻기도 한다. 당연히 나는 물 한 잔만 마시고 왔지. 물통을 들고 간 사람들은 물통에 물을 받아 마시고 물을 마실 수 있게 컵도 하나 비치돼 있다.
물은 시원하다. 하지만 역시 카즈베기 사메바 성당 물 맛을 따라잡을 순 없다.
시원하게 물 한 잔 마시고 내려왔던 길을 따라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올라가는 중간에 아까 같이 마슈르카를 탔던 외국인 언니들이 있어서 같이 벤치에 앉아 쉬었다.
보드베 수도원에 내려서 몇 번 마주쳤는데 이제야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이름은 뭔지 물어봤다. 언니들은 독일에서 온 학생들이라고 했다. 그래 나이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나보다 어리겠지^^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오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보드베에서 시그나기까지 3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같이 걸어가기로 했다. 독일 친구들은 날씨가 더워서 택시 타려고 물어봤더니 비싸다고 해서 걸어가기로 했단다.
보드베 수도원 입구로 나오니 버스 투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이야기는 고로 버스도 많다는 것. 독일 친구들이 버스 투어 중인 독일인들을 만나서 히치하이킹할 거라고 얘기했다. 나는 당연히 좋다고 했지!
제일 앞에 세워진 버스에 물어보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이 다 동의해야 태워 줄 수 있다고. 그래서 기다렸는데 다행히 다들 시그나기까지 태워주는 걸 동의해줘서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아 정말 오늘도 감동이야ㅠㅠ 날씨가 너무 더워서 걱정했는데 관광버스라니!!
독일 친구 말로는(미안해 하루 지나서 일기 쓰는데 이름 까먹었다규...) 원래 독일 사람들이 원칙을 중요시해서 (특히나 나이 든 사람들이 여행 중이어서)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고.
편하게 시그나기에 도착해서 독일 친구들이랑 같이 돌아다녔다. 나는 시그나기가 와인으로 유명한 동네인 줄 알았는데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요새가 엄청 유명했다.
독일 친구 말로는 만리장성 다음으로 세계에서 제일 길다고! 믿거나 말거나ㅎㅎ
시그나기를 둘러싸고 있는 요새는 생각보다 길어서 여행자들을 위한 트랙을 따로 만들어 놨다. 짧은 거리지만 요새를 따라 걸을 수 있다.
1762년에 조지아의 왕인 헤라클리우스 2세(King Heraclius II)의 지원으로 이 곳에 마을이 세워졌으며 이 지역을 공격하고 약탈을 일삼는 다게스탄 부족들로부터 마을을 보호할 수 있도록 요새를 건축하였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그렇다고 한다. 오늘도 새로운 사실 하나 더 알게 됨.
뷰가 좋을 때는 저 멀리 코카서스산까지 다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안개와 먼지들이 많아 코카서스 산은 볼 수 없었다.
독일 친구들이 조지아 음식 맛있는지 물어봤는데 나는 그냥 보통이라고 했다. 나한테는 너무 짜다고ㅠㅠ 자기들은 베지터리안인데 먹을만한 게 없어서 이탈리아 식당을 찾아다니면서 먹었다고 한다. 여행 다니다 보면 은근히 채식주의자들이 많다. 나는 영원한 육식인이라서 상상할 수도 없지만.
배가 고파서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카즈베기에서 먹어봤던 하차푸리 그리고 그릭 샐러드랑 뉴 포테이토, 레몬에이드!
독인 친구들이랑 메뉴 시키면서 뉴 포테이토가 뭐냐고 도대체ㅋㅋㅋㅋ 시켰더니 감자 구이였다. 맛있었음!
밥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독일 친구 한 명은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는데 한국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봤다고 했다. 자기는 서울밖에 모르는데 내가 다른 도시도 예쁘고 여행 다닐 곳 많다고 함. 외국인들은 서울이나 부산 아니면 제주도 정도까지 밖에 모른다고 했더니 다음에 한국 놀러 갈 테니 소개해 달란다. 그래서 페북 친추함ㅋㅋ
그리고 내가 독일 옥토버페스트 안다고 하니까 막 웃으면서 거기 독일 사람들은 잘 안 간다고ㅋㅋㅋ 왜냐면 너무 비싸서ㅋㅋ 가보면 맥주 1리터에 20유로씩 한단다. 그냥 개인 맥주집에 가면 4,5유로 그리고 마트 가서 사면 2,3유로 정도인데 가격이 미쳤다고ㅋㅋㅋㅋ
오옹 역시 그 나라 유명한 축제는 내국인보다 관광객들이 다 많이 가는구나.
즐겁게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서 밥 먹으니 더 배불렀다. 다만 독일 친구들은 영어를 잘하는데 나는 모지리라서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어버버 거리기만 함. 숙소에서 쉴 때 영어 공부 좀 해야지 원.
밥 다 먹고 나서 독일 친구들은 먼저 트빌리시로 돌아간다길래 같이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근데 4시 버스는 벌써 매진이고 6시 버스만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거라고 구매했지ㅠㅠ 심지어 2시 30분쯤에 갔는데!!
그리고 나서 독일 친구들은 투어리스트 센터 가본다고 했고 나는 동네 더 둘러볼 예정이라 이따가 버스정류장에서 보자 하고 빠이빠이했다.
시그나기는 동네가 작아서 이리저리 둘러보다 보면 다 거기가 거기다. 산 타고 요새 정체 트레킹을 할 게 아니라면 트빌리시에서 당일치기로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길을 따라가다 한 성당으로 들어갔다. 요새랑 연결된 구조 같았는데 신기했다. 거기가 좋아서 한 삼십 분 넘게 멍 때렸다. 경치가 좋아서 계속 앉아 있었다.
앉아서 쉬고 있는데 인도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가족들끼리 여행 왔는지 북적북적하더라. 내가 인도 가고 싶다고 하니까 여기저기 말해주면서 거기 가라고 하는데 내가 뭘 알아야지ㅋㅋㅋ 얘기 나눴던 아저씨네 가족은 잘 사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인도에서 조지아까지 여행을 왔겠지?
그리고 성당을 내려와 여기저기 마을을 둘러보다가 번화가 쪽으로 갔다. 아직 차 시간은 두 시간 남게 남았고 너무 피곤해서 벤치에 앉아 낮잠을 때렸다.
얼마나 졸았을까 일어나서 아까 점심 먹었던 식당 옆 공원으로 갔다. 거기에 식당 와이파이가 잡히길래 앉아서 인터넷 좀 하고ㅋㅋ 오랜만에 고딩친구가 연락 왔는데 보니까 결혼한다고 함! 워매 이제 내 친구들도 결혼을 하는구먼. 풋풋했던 고딩 때가 엊그제 같은데. 전자사전으로 인터넷 소설 보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야ㅠㅠ
나만 아직 질풍노도의 고딩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언제쯤 어른이 될까. 사실 어른이 되기 싫지만ㅋㅋ
몰라몰라. 여튼 오랜만에 친구 결혼 소식을 들으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 보내다가 5시 30분 쯤돼서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독일 친구들은 먼저 갔는지 어쨌는지 보이지 않았다. 트빌리시로 가는 마슈르카가 막 출발 전이라서 바로 탔다. 여섯 시에 출발이라며ㅋㅋㅋ 여기 시스템 어느 정도 알지만 그냥 멋대로넼ㅋㅋㅋ
마슈르카 탔는데 한국인 2명을 만났다. 시그나기 당일치기하고 트빌리시로 돌아간다고 했다. 마슈르카에서 한국사람들을 만나다니ㅎㅎㅎ
여자 두 분이었는데 트빌리시에서 에어비앤비 숙소 한 달 동안 빌려서 여행 중이라고 했다. 조지아는 정말 장기 여행자들의 블랙홀인 듯ㅋㅋ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마슈르카에는 보조 좌석에 앉았다. 근데 궁뎅이가 얼마나 아프던지ㅋㅋㅋ 정말 두 시간 동안 궁뎅이 지옥이었음ㅋㅋㅋ
트빌리시에 도착하고 먼저 이사니역 근처에 내려주길래 거기에서 내렸다. 같은 차를 탔던 한국분들에게 즐거운 여행 되라고 인사한 후 내렸다.
이사니 지하철역 가는 길에 큰 마트가 있길래 들렀다. 근데 역시 까르푸가 짱인듯ㅋㅋ 음료수랑 물이랑 요거트만 몇 개 샀다.
지하철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멀다. 그래도 귀가 찢어질 듯한 지하철 소음, 도착역과 다음 역을 알려주는 지하철 방송도 이베 익숙해졌다. 물론 빠른 에스컬레이터도ㅎㅎㅎ
숙소가 있는 역에 도착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걸어가는데 갑자기 어떤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여행자 같이 보여서 혹시 같은 숙소인가 싶었는데 자기도 한국사람이란다. 내가 한국인처럼 보여서 말 걸었다고ㅋㅋㅋ
그 남자분은 지금 조지아에서 6개월째 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따로 방을 빌려서 살고 있는데 내가 있는 숙소랑 가깝다고! 완전 싱기방기. 조지아 무비자 체류기간이 일 년이라서 그런지 장기 여행자들이 많은 것 같다. 나도 포함해서ㅋㅋㅋ 정말 마력의 조지아야. 다음에 볼 수 있으면 보자고 빠이빠이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오니 삼촌이 저녁 안 먹었지라며 자기도 지금 먹을 거라고 같이 먹자고 했다. 맨날 한식에 진수성찬 대접받는 중ㅠㅠ
배부르게 저녁 먹고 어제 까르푸에서 사 온 와인까지 한 병 다 비움ㅋㅋㅋ 미쳤다 정말 술꾼 되고 있음ㅋㅋㅋ
와인에 멜론까지 찹챱
술 마시고 책 좀 읽다가 뻗었지.
역시 적당한 술 후 읽는 책은 좋은 수면제^^
오늘도 즐거운 하루.
사실 나는 시그나기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겠지만 나는 그랬다능.
※ 이 여행 일기는 2017-2018년 배낭여행을 하던 당시 실시간으로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다시 포스팅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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