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글/1. 배낭여행

[여행+62] 안녕, 트빌리시!_조지아 여행은 계속된다.

김나무 2020. 12. 28. 19:38
2017.09.10. 월요일

 

 

 

조지아 여행이 이렇게 길어질 줄이야. 이제야 겨우 트빌리시를 떠난다. 트빌리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도시. 특히나 나같이 가난한 여행자에게는 천국 같은 곳이다. 그런 트빌리시를 나는 오늘 떠난다.

한 달 그리고 10일

 


7월 31일, 나는 모스크바를 떠나 트빌리시 공항에 도착했다. 작은 공항에서 수하물을 찾고 환전을 하고 유심을 샀다. 여섯 시쯤 공항 밖으로 나갔는데 확연하게 더운 공기가 나를 반겼다. 아, 여기가 조지아구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한데 이제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머물렀던 곳을 떠나려니 섭섭하다.

처음 만난 조지아는 더웠다. 트빌리시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숙소까지 갔다. 도착한 첫날부터 버스비 동전이 없어서 고생했는데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숙소까지 잘 찾아갈 수 있었다. 그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트빌리시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7월 31일부터 9월 11일까지 트빌리시를 거점으로 조지아 여행을 했다. 중간에 아르메니아 예레반으로도 여행을 다녀왔다. 그 시간을 빼더라도 트빌리시 내 숙소 컴포트플러스 호스텔에서 33일 동안이나 지냈다.

그냥 내 집과 다름 없는 곳. 불편한 도미토리 매트리스도 이층침대도 마냥 정겨웠던 곳.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물론 숙소에 삼촌이 오고 나서 거의 매일 술을 마셨지만ㅋㅋㅋ

한국에서 지낼 때보다 더 잘 먹고, 잘 쉬고, 잘 놀았다. 한 여름에 트빌리시에 와서 하루는 밖으로 돌아다니고 하루는 숙소에서 쉬는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충분히 좋았다. 드라마 도깨비 대사를 빌리자면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트빌리시에서 보낸 모든 날들이 좋았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라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숙소에 짱 박혀서 짐을 정리했다. 사실 배낭은 어제 다 싸 둬서 아점을 먹고 쉬었다. 일찍 샤워를 하고 예능도 보고 채고 읽었다. 다른 날과 다름없는 하루. 그렇지만 나는 오늘 저녁 트빌리시를 떠난다. 야간기차를 타고 주그디디로 가서 내일 새벽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를 탈 예정이다. 드디어 오늘, 나는 트빌리시를 떠난다.


언니는 시내 둘러본다고 나갔다. 삼촌과 나는 여전히 뒹굴뒹굴. 아, 삼촌이 순간접착제 있다고 해서 내 배낭에 끼워둔 뱃지도 붙여줬다. 다른 건 괜찮은데 예레반에서 심지어 오천 원이나 주고 산 뱃지가 자꾸 떨어져서ㅠㅠ 삼촌이 아쥬 깔끔하게 붙여줌!! 이제 안 떨어질 거야^^

완쪽부터 대만, 조지아, 아르메니아. 러시아 뱃지는 못 삼ㅠㅠ

 

뱃지 붙이고 룰루랄라 예능보고 책 읽고 놀았다. 미 비포 유를 다 읽었는데 이런 결말 오랜만이야. 해피엔딩인 듯 해피엔딩 아닌 해피엔딩 같은 너. 결국 인생을 사는 건 나 자신이지 다른 사람이 아니다. 선택은 온전히 내 몫.


여행 올 때 챙겨 온 옷 중에서 남방 하나를 안 입어서 버릴까 하다가 아까워서 놔뒀다. 삼촌한테 혹시 필요하냐고 물어봤더니 안 그래도 필요했다고 해서 삼촌 줬음ㅋㅋ 선물인 듯 선물 아닌 선물 같은 너.

삼촌이 옷 입어보더니 룰루랄라. 진짜 잘 어울렸음!!

 

그리고 삼촌이 가방 꺼낸다고 갑자기 배낭 정리 시작ㅋㅋ 그러더니 패션쇼도 한 번 하고 나는 삼촌한테 선물도 받았다! 천연염색 스카프라는데 좋음!!

멕시코산 레슬링 마스크 쓰는 중

옿ㅎㅎㅎㅎㅎㅎ
삼촌 선물 고마워요!!ㅋㅋㅋㅋ

 

계속 숙소에 있으려고 했는데 삼촌이 산책 가자고 해서 같이 밖에 나갔다. 근처에 프레스코라는 마트가 있는데 아직 거기에 가본 적이 없어서 거기까지 가기로 했다. 프레스코는 까르푸 다음으로 큰 마트 체인이다.

걸어서 프레스코까지 가는 길.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 경치도 달라 보여야 하건만 그냥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평화롭고 조금은 시끌벅적한 트빌리시.

삼촌 저 가방 찾으려고 배낭 다 뒤짐ㅋㅋ

프레스코 가서 저녁에 먹을 맥주랑 삼촌이 기차에서 먹으라며 간식도 사줬다. 정말 많이 받고만 간다ㅠㅠ

숙소애 돌아오니 언니가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저녁 준비를 했다. 마지막 저녁 메뉴는 호박전, 소세지구이, 통조림 생선찌개! 그리고 아까 사 온 비싼 덴마크 병맥주까지! 너무 맛있게 먹느라 마지막 사진도 못 찍었다ㅠㅠ

막상 저녁을 먹고 나서도 떠난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근데 언니랑 삼촌이랑 사진도 찍고 나니 아, 내가 떠나긴 하는구나 싶더라. 마나나랑도 사진을 찍었다. 숙소에서 매일 보던 얼굴인데 이제는 안녕이구나.

마나나랑 같이! 여기서 살만 포동포동 쪄서 간닼ㅋㅋㅋ


여덟 시쯤 숙소에서 나왔다. 삼촌이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줬다. 제대로 인사를 못하고 온 것 같아서 아쉬운데 그래도 울진 않았다.

삼촌,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덕분에 맛있는 한식도 매일 먹고 술도 마시고 좋았어요. 삼촌이 이 글을 볼지 모르겠지만 남은 여행도(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ㅎㅎ)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이 됐으면 좋겠어요!


스테이션 스퀘어에 도착해서 숙소에서 가져온 삶은 계란을 먹었다. 언니가 음료수랑 물 사 와서 같이 냠냠. 기차 타면 먹을 시간 없을 것 같아서 기다리면서 먹었다.

우리는 2등석을 예매했는데 현지인들은 거의 없고 다 여행자들이 탔다. 내 위층에 프랑스 언니만 타서 4인실에 3명이 타고 갔다. 기차는 오후 9시 45분 정각에 출발했다. 주그디디는 다음날 오전 6시 5분에 도착 예정.

기차가 출발했다. 이제 안녕이구나 트빌리시.

정말 매력적인 도시. 그 무엇보다 너무나도 편하게 잘 지냈던 곳. 아마도 곧 돌아가야만 할 것 같은 장소.

어떤 여행자는 트빌리시에 볼 게 없다고 말하지만 너무나 볼거리가 많고 예쁜 골목들과 멋스러운 건축물들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절한 사람들이 있다.

조지아 여행을 꿈꾸고 있는 당신에게 트빌리시는 천국이다. 물가 싸고 볼거리 많고 사람들 친절하고. 물론 나에게 좋은 여행지가 모두에게 좋지는 않겠지만.

뒷산에 가면 늘 내 얼굴을 때리던 시원한 바람,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기를 쓰며 마시던 시원한 레몬에이드, 매일 같은 늦잠, 삼촌과 같이 술 마시던 날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동네, 항상 사람을 따라다니던 동네 멍멍이를 기억한다. 언제 다시 트빌리시에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 트빌리시, 잘 지내!


트빌리시에서 한 번도 숙소 바꾸는 일 없이 지냈던 곳! 컴포트 플러스 호스텔.

Comfort Plus Hostel

111a Tianeti St, Tbilisi 0141 조지아

 

 

 

※ 이 여행 일기는 2017-2018년 배낭여행을 하던 당시 실시간으로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다시 포스팅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