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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64] 우쉬굴리 가는 날(feat.별이 쏟아지는 밤)

김나무 2020. 12. 28. 20:47
2017.09.12
Mestia-Ushguli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아침에 일어났더니 8시 30분ㅋㅋㅋ 9시에 마트 앞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차를 타기로 했는데 늦잠이라니ㅋㅋㅋ 언니랑 부리나케 준비해서 후다닥 체크아웃하고 밖으로 나갔다.

오늘 아침에도 물이 졸졸졸 나와서 대충 씻었다. 주인아줌마한테 방값으로 35라리 내고 숙소에서 나왔다. 아줌마 좀 더 깎아줄까 했는데 안 깎아줌ㅋㅋㅋ

빛의 속도로 걸어서 어제 티켓 예약했던 마트까지 갔다. 언니가 잠깐 빵을 사 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가게 앞에 미니밴 한 대가 섰다. 그 차가 바로 오늘 우쉬굴리까지 타고 갈 차량! 근데 마트 앞에서는 언니랑 나만 탔다. 설마 둘만 타고 가나 했는데 응, 역시 아니었다ㅋㅋ

아홉 시에 출발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마트에 손님이 열 시까지 오기로 했다며ㅋㅋㅋ 미친ㅋㅋㅋ 그래서 기사 아저씨가 공원 옆에 정류장에 차 세워두고 쉬라고 하길래 언니랑 같이 한참을 뒹굴뒹굴. 빵이랑 우유도 먹고 옆에 앉은 폴란드에서 온 노부부랑 이야기도 나눴다.

기사 아저씨가 차에 타라고 해서 차 타고 다른 가게 앞에서 손님을 태웠다. 프랑스인 노부부가 탔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십몇 년 전에 한국 여행 갔었다고! 설악산이랑 경주도 가고 3주 정도 한국을 여행을 했다고 한다. 우와 나는 설악산 안 가봤는뎈ㅋㅋㅋ

그리고 마지막 손님 한 명까지 타고나서 차는 출발했다. 출발 시간은 열 시ㅋㅋㅋ 이건 뭐 왜 일찍 나온 건지ㅠㅠ 마지막 손님도 프랑스인! 혼자서 여행 온 남자였는데 덩치도 작고 어려 보였다. 프랑스 사람들끼리 만나서 그런지 가는 동안 얼마나 말을 많이 하던지ㅋㅋ

우쉬굴리까지는 2시간 정도 걸렸다. 메스티아에서 5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가는 길이 거의 비포장도로라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역시 미니밴이 마슈르카보다 훨씬 더 편하다
오늘도 파란 하늘
덜덜덜
공사 중이야 기다리는 중

비포장도로를 열심히 달려 드디어 우쉬굴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마자 펼쳐져 있는 말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

사진으로 그 아름다움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도착하자마자 언니랑 같이 너무 좋다면서 하루 자고 가길 잘했다고ㅋㅋ

기사 아저씨한테 내일도 오냐고 물었더니 내일도 온다고 했다. 그래서 돌아가는 건 별 걱정 안 했음ㅋㅋ

그리고 우리 숙소 에델바이스를 찾아 걸었다. 가는 길도 아주 그냥 그림이 따로 없다.


따로 예약하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방이 있었다! 처음에 1인당 20라리 불렀는데 깎아서 35라리 해달라니까 아저씨가 30라리 해주겠다고 함ㅋㅋㅋ 뭐지 여튼 좋음ㅋㅋ
우리가 메스티아에서 티켓 예약했던 마트 아줌마 이름이 '나지'인데 우리가 우쉬굴리 숙소 에델바이스 간다니까 갑자기 그 숙소 열쇠를 줌ㅋㅋ 아마 숙소 썼던 사람이 모르고 열쇠를 들고 메스티아에 돌아간 듯ㅋㅋ 그래서 언니랑 나는 열쇠 갖다 준다고 하고 받아서 왔지. 에델바이스 숙소 아저씨한테 열쇠를 줬더니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저씨가 엄청 친절하게 잘해줬다. 우리가 하루 동안 머물 방은 싱글 침대 3개가 있는 방이었는데 아저씨가 그냥 두 명이서 쓰라고 했다. 거기에다가 방에 있는 창문 밖으로 바로 설산이 보임! 숙소 자체도 뷰가 좋아서 그냥 숙소에만 죽치고 앉아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방 좋음 굳굳 두 명이서 30라리! 물도 아주 잘 나온다.
숙소 마당에 죽치고 있던 멍멍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다른 댕댕이


숙소에는 주인아저씨랑 딸(알고 보니 아저씨 조카) 중,고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어린 여자애가 있었다. 근데 이 여자애(이름이 타티아였나 물어봐놓고 또 까먹음ㅠㅠ)가 요리를 엄청 잘한다. 숙소랑 식당을 같이하는데 점심을 먹으려고 주문했더니 자기가 척척 만들어서 갖다 줬다.

우쉬굴리에 도착한 첫날, 숙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시켜 먹었다. 메뉴에 보르쉬가 있어서 보르쉬 하나랑. 오믈렛 하나를 시켰다. 사진 찍을 새도 없이 다 먹음ㅋㅋ 보르쉬는 맛있었는데 오믈렛은 그냥 계란전이라서 비추. 메스티아에서 챙겨간 햄이랑 치즈도 잘라서 빵이랑 같이 먹었더니 완전 배불렀다

멍멍이가 자꾸 먹을 거 달라고 주변을 어슬렁 거리길래 먹고 남은 음식을 조금 줬는데 겁나 잘 먹음ㅋㅋ 내 손도 먹을 기세로 먹었는데 엄지 손가락 살짝 물림ㅋㅋㅋ조금 아팠귴ㅋㅋㅋ

밥 먹고 조금 쉬다가 빙하까지 트레킹 가기로 했다. 후기를 보니 세 시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다고 해서 두 시 정도에 숙소에서 나왔다. 산 이름이 아마 Shkhara였었나 슄하라 정도로 읽으면 될 것 같음ㅋㅋ

숙소에서 나왔는데 풍경이 너무 예뻐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진짜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예쁨ㅠㅠ

사진에 다 담을 수 없어서 아쉬움

실제로는 사진보다 100배 더 예쁘다

울타리에 꽂혀서 계속 사진 찍음ㅋㅋ

마을을 넘어 쭉 계속 되는 길을 따라가면 된다
저 멀리 보이는 산까지 걸어가야 됨ㅋㅋ

가는 길은 정말 좋다. 평탄한 길이 계속된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길을 따라 흐르는데 중간에 두 번 정도 계곡을 건너야 한다. 깊거나 물살이 센 곳이 아니라서 신발 벗고 건너도 되고 돌다리를 건너도 된다. 다만 돌다리가 무섭다고 조금 멈칫하다가는 바로 물에 빠지는 수가 있음! 지나가다가 빠진 사람은 못 봤다. 물론 나도 빠지지 않았음ㅋㅋ

길 옆으로 흐르는 계곡 물. 아마도 석회가 섞여 물 색이 저런듯
아직 멀다
말 타고 가는 사람도 종종 보임. 안 타서 얼마인지는 모름ㅋㅋ
저기 우뚝 솟은 돌을 밟고 조심조심 건너세염!
진짜 경치가 끝내줌
오랜만에 운동화를 신어서 그런지 답답하네ㅠㅠ


계속 걷고 또 걸었다. 우쉬굴리 길은 비포장에 말이랑 소가 많아서 곳곳에 똥이 많은데 잘 피해 가면 된다ㅋㅋㅋ 내가 갔던 날에는 날씨가 엄청 좋았는데 비 오거나 흐린 날에는 길이 진창이 돼서 돌아다니기 별로일 것 같더라. 우쉬굴리 가는 날에는 날씨가 좋길 바라며 기도해야 함ㅋㅋ

가는 길에 풀 뜯는 소도 보고
이름 모를 신기한 노란꽃도 만났다
점점 더 가까워 지는 산
구름 하나가 뿅하고 나타남
점점 더 물살이 세지는 중
이제 거의 다 왔나 했는데
아직도 멀었네ㅠㅠ


중간에 매점이 있어서 음료 하나 사 먹었다. 레몬에이드 3라리 받음!! 그래도 여기서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맛있게 먹었다.

다시 길을 걸었다. 점점 산이랑 가까워져서 그런지 평탄한 길이 아닌 오솔길이 이어지다가 돌멩이가 가득한 길이 나왔다. 근데 아이러니한 것이 이 산은 멀리서 보는 게 훨씬 더 예뻤다. 가까이 갈수록 별 느낌이 없음ㅋㅋ

빙하까지 가려고 했는데 길도 별로고 무엇보다 경치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서 다시 내려갔다. 시계를 보니 벌써 네 시 삼십 분이 넘은 시간. 우쉬굴리 마을까지 돌아가려면 적어도 한 시간 삼십 분에서 두 시간은 걸어야 하기에 빨리 내려가기로 했다.

아까 올라오면서는 못 느꼈는데 매점을 지나서 생각보다 많이 올라갔더라. 매점에서 삼십분 정도 걸렸으니까 약 1,2km 정도 더 올라갔던 것 같다. 다시 매점 내려와서 물 한 병 마시면서 쉬었다. 힘을 충전해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우쉬굴리는 마을에서 보는 경치도 충분히 예쁘다. 걷기 싫으면 그냥 뷰 좋은 숙소나 식당에서 맛있는 거 먹으며 경치를 즐기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물론 걷기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추천! 가는 길이 평탄해서 걷기 좋다.

간이매점. 조금 비싸지만 물, 맥주, 음료수 등 다양한 마실 거리를 판매한다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도 충분함
역시 너는 멀리서 보아야 예쁘구나

파란 하늘
돌아가는 길. 벌써 해가 뉘엿뉘엿
돌다리는 언제나 두드려보고 건너기
표지판 따라 마을에 도착!

그림 같은 풍경을 따라 숙소에 돌아왔다. 얼른 샤워하고 저녁을 먹었다. 저녁은 아까 먹다 남은 햄이랑 치즈, 빵 그리고 와인! 남은 와인 마시면서 언니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여행 중에 이렇게 여행 메이트를 만나 여행을 하고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

아직도 나는 메스티아, 쿠타이시 여행을 마치면 트빌리시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다. 이번 주말부터는 다시 혼자 여행이다. 쿠타이시에서 바투미를 거쳐 터키로 넘어갈 예정인데 아직 확실한 계획이 없다.

터키 여행 길게 안 하고 바로 이스탄불을 거쳐 스페인으로 가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지 느긋하게 터키 여행하고 바로 다합으로 갈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잘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지금 내가 여행하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너무나 좋다.

저녁을 먹고 나서 별을 보러 밖으로 나갔다. 하늘을 보자마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우쉬굴리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 별을 보면서 여행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시작하고 그렇게 많은 별을 본 게 처음이었다. 우쉬굴리는 무려 해발 2,000m 고산 지대에 자리한 동네라 저녁에 엄청 춥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담요까지 꽁꽁 싸맨 후에 밖에 앉아서 한참 동안이나 별을 봤다.

별을 담을 수 있는 투명한 유리병이 있다면 우쉬굴리 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유리병 가득 담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앞으로 우쉬굴리에서 봤던 것보다 더 많은 별들로 가득한 밤하늘을 보게 될 날이 있겠지. 그렇지만 오늘 내가 봤던 우쉬굴리 밤하늘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오늘은 정말 행복한 날이다.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을 보며 문득 다시 생각한다.
그래, 나 여행하는 중이지!

눈부실 정도로 파란 하늘